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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일기
관리자  | 2010-03-08 17:21:10 | 조회 : 3809 인쇄하기

 

1839년 기해박해 때 죽임을 당한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자전

 

- <기해일기> -

 

 

 

 * 1838년 말부터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에 의해 시작되었고, 현석문이 순교 일기를 완성한 뒤에는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이를 보완하였다.

 

- 1836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던 앵베르 주교는 1838년 말 박해가 일어나 순교자들이 탄생하게 되자 이들의 사적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같은 해 12월 31일부터 자신이 체포되기 3일 전인 1839년 8월 17일까지의 순교 사적을 수기 형태로 기록하여 <1839년 조선 서울에서 일어난 박해에 관한 보고>라 명명하였으며, 이 보고서는 9월 6일 모방과 샤스탕 신부에 의해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내졌다.

 

- 이 기록을 마치기에 앞서 앵베르 주교는 몇 개월전부터 자신이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정하상 바오로와 현경련 베네딕다에게 순교자들의 사적을 면밀히 조사하여 정리하는 일을 계속하도록 하였으며, 이문우 요한과 최영수 필립보, 현석문 등에게도 같은 임무를 맡겼다.

 

- 예상대로 앵베르 주교는 8월 10일 자신을 찾아 다니는 포졸들에게 스스로 체포되는 몸이 되었고, 9월 21일 모방, 샤스탕 등 두 선교사와 함께 순교하였다. 정하상과 현경련, 이문우 등도 1839년에 모두 순교하였다.

 

- 이때부터 현석문과 최영수는 주교의 명대로 산간 벽지를 돌아다니며 순교자들의 행적을 조사하여 정리하기 시작하였는데, 1841년 8월 최영수가 순교한 뒤에는 현석문이 전적으로 이 일을 맡게 되었다. 현석문은 이후 이재의 토마스와 최 베드로의 협력을 얻어 전후 3년 동안 교우들로부터 모아들인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하여 기해박해 순교자전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기해일기>의 원본이다.

 

* 자료 출처: <한국 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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