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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최양업 신부] (22) 10년간 조선 교회 이끈 페레올 주교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2-02 17:03:52 | 조회 : 256

가톨릭평화신문 2017. 02. 05발행 [1400호]
 


[다시보는 최양업 신부] (22)


10년간 조선 교회 이끈 페레올 주교, 그의 세 가지 업적


▲ 페레올 주교가 조선인 성직자 양성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길림 소팔가자 교우촌에 머물며 최양업 신부를 가르치면서부터다. 사진은 소팔가자 성당 전경.


▲ 페레올 주교는 조선인 성직자 양성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배티에 소신학교를 설립했다. 사진은 배티 성지에 복원된 최양업 신부 동상.


▲ 페레올 주교가 조선인 성직자 양성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소팔가자에 머물러 최양업을 가르치면서부터이다. 사진은 소팔가자 교우촌 입구에 조성된 김대건로.




제3대 조선대목구장 장 조제프 장 밥티스트 페레올(Jean Joseph Jean-Baptiste Ferréol, 1808~1853) 주교는 1839년 4월 28일 조선 선교사로 선발된 이후 1853년 2월 3일 선종할 때까지 약 14년간 조선 교회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였다. 1843년 12월 31일 중국 요동 양관성당에서 만주대목구장 베롤 주교에게서 주교품을 받고 제3대 조선대목구장이 된 그는 만 10년간 조선 교회를 이끌었다.

페레올 주교의 업적은 크게 세 가지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인 성직자 양성의 결실을 거뒀을 뿐 아니라 그 기초를 놓기 위해 조선에 신학교를 설립한 공로다. 둘째,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작성해 이들의 시복시성 재판에 결정적 증거 자료를 남긴 점이다. 셋째, 바다를 통한, 보다 안정적인 조선 입국로를 개척한 부분이다.

조선인 성직자 양성 결실

페레올 주교가 조선 신학생들의 신학교육에 관여한 것은 신학생 최양업이 1842년 11~12월 중국 길림성 소팔가자 교우촌에 도착하면서다. 1839년 기해박해로 조선 교회가 초토화되면서 페레올 주교와 조선 교회 간의 연락이 끊겼다. 이 상황을 모른 채 페레올 주교는 1840년 9월부터 약 2년간 소팔가자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이처럼 사면초가에 빠져 있을 때 최양업이 나타났다. 그리고 최양업과 동행한 만주대목구 선교사 드 라 브뤼니에르 신부가 그레고리오 17세 교황이 페레올 주교를 벨린의 명의 주교이자 조선대목구장 승계권을 가진 부주교로 임명했다는 교황청 편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이어 페레올 주교는 1843년 3월 조선 국경을 탐사한 후 소팔가자로 온 김대건과 메스트르 신부에게서 1839년 박해 소식과 선교사들의 순교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1843년 12월 31일 양관성당에서 주교품을 받고 제3대 조선대목구장이 된다. 이 주교 서품식에는 주인공인 페레올 주교와 메스트르 신부, 신학생 최양업ㆍ김대건 등 조선대목구 관계자 모두가 참여했다.

페레올 주교는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해 1844년 6월 2일 최양업ㆍ김대건에게 차부제품을, 그해 12월 10일께 부제품을 줬다. 최양업, 김대건의 부제 서품식 이후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부제,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한 조가 되어 조선 입국로를 개척했다. 이 과정에서 페레올 주교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김대건 부제에게 사제품을 줬다. 조선인 성직자 양성의 첫 결실이었다. 반면, 최양업 부제는 메스트르 신부와 4차례에 걸쳐 조선 입국을 시도하다 모두 실패하고 1849년 4월 15일 남경교구장 서리 마레스카 주교에게서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페레올 주교는 조선 입국 이후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손골과 배티에 소신학교를 세우고 신학생을 선발해 교육하고, 대신학교 교육을 위해 말레이시아 페낭 국제 신학교로 유학을 보내고자 했다.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성 자료 제공

페레올 주교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이후 순교자들의 전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1846년 9월 22일에는 조선 신자들이 정리한 「기해일기」를 번역, 수정해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같은 해 11월 3일에는 페레올 자신이 직접 쓴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파리외방전교회 홍콩대표부로 보냈다.

최양업은 부제 시절 페레올 주교의 요청에 따라 홍콩대표부에 머물면서 프랑스 말로 쓴 페레올 주교의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행적」과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 말로 번역했다. 페레올 주교의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행적록에는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순교자 82위의 약전이 정리돼 있다. 이 기록이 시복시성의 결정적 기초 자료가 돼 이들 중 79위가 성인품에 올랐다.



해상 입국로 개척

페레올 주교는 바닷길을 이용해 조선에 입국한 첫 번째 선교사다. 그는 다블뤼ㆍ김대건 신부와 함께 1845년 8월 31일 중국 상해에서 라파엘 호를 타고 출발해 그해 10월 12일 강경 황산포 인근에 상륙했다.

사실, 바닷길을 통한 조선 입국을 첫 번째로 구상한 이는 제2대 조선교구장인 앵베르 주교였다. 앵베르 주교는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고 배가 자주 드나드는 항구에 집을 구해 조선과의 연락망을 구축한 이후 이 항구를 통해 배를 이용해 조선에 입국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페레올 주교 역시 1843년 초부터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주 땅에 선교 전초 기지를 마련하고 중국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후 조선 배로 갈아타고 입국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바닷길 개척에 관심이 컸던 그는 1845년 1월 변문에서 김대건 부제만을 조선에 입국시킨 후 다시 배를 끌고 상해에 온 김대건 부제를 다시 만나 그 배로 조선에 입국했다.

페레올 주교는 입국 후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에게 바닷길을 이용해 입국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이 둘은 고군산도와 백령도 인근에서 두 차례나 조선 입국을 시도했으나 신자들과 만나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메스트르 신부는 10년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다 1852년 8월 29일 고군산도를 통해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다. 최양업 신부는 바다가 아닌 의주 변문으로 1848년 12월 말 입국했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해상 입국로 개척을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돼 결국 순교했다.

이러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1860년대 이후에는 선교사들이 상해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백령도 부근에서 조선 배로 갈아타고 입국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페레올 주교의 바닷길 조선 입국로 개척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커다란 결실을 보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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