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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근현대 순교자 214위 시복시성을 향해 (상)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2-15 12:18:05 | 조회 : 412

가톨릭신문 2017-02-19 [제3032호]



조선 왕조·근현대 순교자 214위 시복시성을 향해 (상)


-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신앙의 씨앗 이 땅에 심은 한국교회 초석들


귀족·평민·장애인까지 모든 계층 포함
 다양한 삶의 현장서 신앙 증거한 순교자
 신앙의 보편성 드러내는 표지 역할



2월 22일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 이하 시복시성특위)는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예비심사를 시작한다. 조선시대와 근현대 순교자 214위에 대한 지역교회 차원의 시복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2009년 주교회의가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한국 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를 추진하기로 한지 8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이와 때를 맞춰, 본지는 두 차례에 걸쳐 순교자들의 면면과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 및 절차를 확인하고, 향후 전망을 고찰한다.


한국교회는 1984년 ‘한국 103위 순교 성인’이 시성되고 2014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가 시복되는 기쁨을 맛봤다. 하지만 103위 시성과 124위 시복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초석으로 신앙의 모범을 보였던 초기 순교자들은 시성 및 시복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주교회의는 2009년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와 ‘한국 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주교회의는 각 교구에서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복 추진 대상자를 추려 133위를 결정했다.

이어 주교회의는 2013년, 새로 추진하는 시복시성 안건의 제목을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로 결정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2월 22일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예비심사를 시작한다. 사진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번에 시복재판을 시작하는 조선 왕조 순교자 133위에는 조선 초기 순교자부터 교회의 박해가 끝나가던 병인박해 막바지에 순교한 이들까지 포함됐다.


박해의 광풍이 가장 극심했던 병인박해(1866~1874) 순교자가 91명으로 가장 많다. 신유박해(1801~1802) 순교자는 19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가 순교했던 기해박해(1839~1841) 순교자는 10명이며, 박해가 거의 끝나가던 무인-기묘박해(1878~1879) 순교자 4명도 포함됐다.

출신지별로는 대전교구 출신 순교자들이 35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가 각각 27명과 23명으로
그 뒤를 따랐다. 청주교구 출신은 16명이다.

133위 순교자 중에는 귀족과 평민, 장애인 등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포함돼 있다.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는 왕족이었으며, 전 야고보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이들은 조선시대 당시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증언했으며, 그러한 삶은 신앙의 보편성과 정수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 이벽 요한 세례자


조선 왕조 순교자 133위 중 대표인물은 이벽(요한 세례자)이다. 이벽은 18세기 조선 서학(西學)사상과 초기 천주교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서양문물에 능통했던 그는 서학의 배경에 천주교가 있음을 알았다.

이벽은 권철신(암브로시오)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승훈(베드로), 정약용(요한),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등과 함께 천진암 강학회에서 신앙을 탐구했다. 이들은 강학회를 통해 동양의 종교와 사상을 천주교와 비교하며 천주교 신앙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서학이 신앙으로 발전된 데에는 이벽의 공이 컸다. 그는 서학이 단지 학문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것이며, 믿고 실천하고 깨달아야 할 인생의 진리이자 영원한 생명의 진리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정약종(2014년 시복)을 제외한 이들 신앙의 선조는 모두 이번 예비심사 대상자 133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후 이벽 등 신앙의 선조들은 이승훈에게 북경의 선교사를 만나 천주교 서적을 구해다 줄 것을 요청했다. 이승훈은 북경의 북당성당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뒤, 관련 서적과 성물을 갖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당시 이벽은 서울 수표교 자신의 집에서 서적들을 더 열심히 읽고 공부한 뒤 선교에 나섰다. 마침내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이벽과 권일신이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써 조선에 교회가 설립됐다.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세례로 결속된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이뤄낸 것이다.

이벽은 동료들과 함께 교리를 전하는 데 더욱 열중했다. 이후 김범우(토마스)와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그리고 유항검(아우구스티노) 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또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에서 신앙 공동체 모임을 지속했다.

하지만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명례방 모임이 발각되자, 이들은 유배나 배교를 강요당했다. 이벽도 부친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집 안에 갇힌 상태가 된다.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끊긴 채 이벽은 가족으로부터 배교를 강요받았다. 가족의 박해가 계속되자 이벽은 스스로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에 열중했다. 결국 그는 가족의 박해로 1875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벽의 죽음에는 여러 설이 존재하고, 파리외방전교회 달레(Dallet)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가 배교했다고 단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벽이 조선 초기 교회의 기둥으로서 적극적으로 교리를 연구하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벽은 자신이 가르치고 배운 것을 흐트러짐 없이 실천하고 양반 가문의 자제로서 할 수 있는 자신의 방법으로 신앙을 지키다 목숨까지 내놓았다.


■ 지난 과정과 앞으로의 전망

주교회의가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시복추진을 결정한 이후, 각 교구는 조선 초기 교회에서 신앙의 모범을 보인 수많은 순교자 중 대상자를 선별했다. 대상자 선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진행됐고, 사전 평가를 거쳐 133위가 결정됐다.

2013년 3월, 시복시성특위는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들을 임명했다. 이들은 12차례의 회의를 통해, 선별된 순교자에 대한 본격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순교자들의 삶의 굴곡과 요소를 여러 각도에서 빈틈없이 검토했다. 논란과 이견의 소지를 보이는 대상자에 대해선 교차연구를 거듭했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면밀히 보고했다.

그 사이, 주교회의는 2014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추진 안건 담당 청원인으로 김종강 신부(청주교구·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임명했다. 이어 2015년에는 조선왕조 순교자 133위의 약전을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됐다. 이어 2016년 10월 5일 시성성으로부터 ‘장애없음’ 교령을 받았다.

시성성의 ‘장애없음’ 결정으로 한국교회는 본격적으로 133위의 시복을 위한 예비심사를 착수할 수 있게 됐으며, 그 첫 법정이 2월 22일 열린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들 순교자들이 보여줬던 신앙의 증거를 찾고 판단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난 2014년 시복됐던 124위의 시복재판은 2004년 7월 5일에 시작해 2009년 5월 20일 마무리됐다. 이어 시성성의 재판문서 검토와 시복결정까지 5년이 더 걸렸다.

133위에 대한 재판 또한 간단하지 않고 긴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저작물에 대한 출판 저작물 검열, 법정에서의 자세한 검증의 시간, 학자들의 증언 및 검찰관의 부정적인 증언까지 종합해 재판문서를 작성하게 된다. 특히 초기 교회공동체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이벽 선조의 순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만큼, 추후 재판 과정을 통해 검증과 추가 연구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시복시성특위 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예비심사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삶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일로, 장하신 순교자들의 순교를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증명하는 일이 계속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주교는 아울러 “보다 중요한 일은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들이 그분들의 믿음과 삶이 일치했던 모습을 본받는 일”이라면서 “그분들의 믿음과 삶을 본받으려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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