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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11) 코끼리로 탈롱까지 가다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4-14 10:04:18 | 조회 : 217

가톨릭평화신문 2017. 4.15. 발행 [1410호]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11) 코끼리로 탈롱까지 가다


야생에서 생사 위기 오가며 더위와 고군분투 



브뤼기에르 주교는 일행이 모두 병을 앓게 돼 일정을 수정해 탈룽으로 갔다. 사진은 탈룽의 랜드 마크인 탈루산. 태국관광청 제공


▲ 브뤼기에르 주교 일행은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불을 내는 등 숲을 개척해 가면서 밀림을 통과해야 했다. 사진은 탈룽의 고산 지대. 태국관광청 제공



케다에서 태국 리고르로 향하던 여정

열대성 찜통 더위에 독사·벌레 득실/ 마실 물 없어 흙탕물 끓여 마시기도

뤼기에르 신부 제외한 일행 병 앓아,  호송인 바꾸러 탈롱으로 행선지 수정


브뤼기에르 신부 일행은 케다(Keda)에서 리고르(Ligor)로 출발했다. 오늘날 나콘시탐마랏으로 불리는 리고르는 방콕에서 약 610㎞ 떨어진 태국 남부의 중심 도시다. 1767년 샴(태국)의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한 후 리고르 왕국으로 독립했으나 곧 샴의 방콕 왕조에 귀속되고 말았다. 이 시기 샴은 방콕 왕조의 라마 3세(1824~1851)가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샴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왕국으로 라오스와 버마(미얀마), 캄보디아뿐 아니라 케다, 페를리스(perilis), 클란탄(kelantan), 트렝가누(trengganu) 등 말레이 반도 북부 4개의 무슬림 왕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브뤼기에르 신부 일행은 케다 관장이 내준 코끼리를 타고 갔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분명 난생처음 코끼리를 타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실제 코끼리를 처음 봤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듯 코끼리를 타본 경험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1827년 6월 20일 자)에서 코끼리에 관해 장황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는 코끼리의 키와 덩치를 보고 놀랐습니다. 유럽에서 타는 말들은 이 나라의 코끼리와 비교가 안 됩니다. 코끼리는 키가 3m 전후이고, 상아는 길이가 1m, 굵기가 30㎝나 됩니다. 밀림에서 살던 그 힘세고 무서운 짐승이 길들여진다는 게 불가사의합니다. … 코끼리의 걸음을 가로막을 것은 거의 없습니다. 가다가 나무를 만나면 코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립니다. 어떤 때는 나뭇가지를 아래로 끌어당겨 발로 짓이깁니다. 진창을 지나가기 어려우면 그 널찍한 배를 바닥에 대고 진창 위로 기어갑니다. 한 시간에 4㎞를 조금 더 갑니다….”

리고르로 가는 여정은 기대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길을 나서기 며칠 전 여행객 9명이 무장강도에게 피살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정 중에 그들 가운데 한 명의 시신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목격했다. 이 시신을 본 14명의 무장 호송자들은 겁에 질려 “호송단을 보강하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브뤼기에르 신부에게 억지를 부렸다.

또 페낭에서 함께 떠난 중국인 신입 교우와 케다 주재 샴 대사가 심부름꾼과 통역자로 보내준 샴 교우 둘이 케다에서 60㎞를 못 가 탈진했다. 밀림이라 길을 내면서 나아가야 했기에 쉽게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수풀에 불을 질러서 길을 만들었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탈진한 이들과 코끼리를 번갈아 타면서 밀림을 헤쳐가야만 했다.

브뤼기에르 신부 자신도 죽을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독이 든 열매를 과일인 줄 알고 막 먹으려는 참에 누군가가 급히 말려 목숨을 구했다. 이후부터 그는 열매를 따기 전에 안내자들에게 늘 물어보았고, 그들은 대부분 “먹을 수 없다”고 답했다.

브뤼기에르 신부 일행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은 후 쉬지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저녁 7시까지 이동하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강도질을 일삼는 원주민과 맹수들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낮에는 습도가 높은 열대 몬순의 찜통 같은 더위와 살갗을 태우는 듯한 강한 햇살이 그들을 괴롭혔다. 한더위에 모래땅을 지날 때면 모래가 햇빛을 반사해 눈을 뜰 수조차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챙이 넓은 천모자를 만들어 얼굴을 가려보지만 피부가 갈라져 물고기 비늘처럼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밤은 더 위험했다. 표범과 호랑이, 독사와 각종 벌레가 득실대는 땅 위에 무방비 상태로 돗자리만 깔고 잠을 자야만 했다. 이들을 방어할 유일한 수단은 캠프 주위에 지펴놓은 불뿐이었다. 어느 날 밤에 일행 주변을 배회하던 호랑이가 가까이 접근했는데 코끼리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가장 괴롭히고 위험에 빠뜨린 것은 깨끗한 마실 물을 얻을 수 없는 거였다. 대부분 썩은 물이거나 흙탕물이었다. 일행은 물을 받아 불순물을 가라앉힌 후 윗물로만 차를 끓여 마셨다. 브뤼기에르 신부보다 먼저 이 길을 갔던 페코 신부가 풍토병으로 갑자기 선종한 까닭도 아마 오염된 물과 해충 때문이었을 것이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리고르로 곧장 가려는 계획을 부득불 접어야만 했다. 모순되게 그를 제외한 일행이 모두 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할 만큼 까다롭게 굴어 브뤼기에르 신부는 멀쩡했고, 모든 걸 아는 양 자신했던 현지인 모두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래서 호송인 일부를 바꾸기 위해 탈롱(Thalon)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탈롱은 오늘날 관광 명소인 파탈룽(Phattalung) 지역이다. 이곳 역시 리고르 왕국의 속국으로 왕의 친척이 통치하고 있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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