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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최양업 신부] (28) 40세 나이로 선종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4-21 09:40:29 | 조회 : 25

가톨릭평화신문 2017. 04. 23발행 [1411호]


 
[다시 보는 최양업 신부] (28) 40세 나이로 선종


조선의 거룩한 사제, 환란 속 교우들 돌보다 ‘주님 품으로’ 



전국으로 퍼진 ‘경신박해’ 9개월 지속     최 신부, 언양 죽림굴 주변 사목 방문

풍비박산 난 교회 안정 되찾도록 도와    결과 보고차 베르뇌 주교 만나러 상경

과로·장티푸스로 쓰러져 병자성사 받아   
임종 전까지 “예수 마리아” 부르다 선종

선종 장소, 문경 혹은 진천 추정


최양업 신부는 1861년 사목 보고를 위해 서울에 있는 베르뇌 주교를 찾아가다 문경에서 과로와 장티푸스로 쓰러졌다. 사진은 최 신부가 자주 다녔던 문경새재 관문.


“지극히 경애하올 신부님들께서 열절한 기도로 우리를 위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과 성모님께 도움을 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포교지를 여러 신부님의 끈질긴 염려와 지칠 줄 모르는 애덕에 거듭거듭 맡깁니다.”

(최양업 신부가 1860년 9월 3일 죽림에서 리브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최양업 신부의 마지막 편지 끝 단락 내용이다. 이 편지는 1860년 경신(庚申)박해가 막 끝났을 무렵에 쓴 편지이다. 좌포대장 임태영이 천주교에 대한 개인적 적개심으로 조정의 명령 없이 사사로이 일으킨 이 박해는 전국적으로 확산돼 9개월간 지속됐다. 이 기간 포졸들은 천주교인들의 재산을 착복하기 위해 약탈과 방화를 서슴지 않았다. 부녀자들은 겁탈당했고 교우촌은 풍비박산이 났다. 1859년 겨울, 한 주막에서 포졸들과 외교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반나체 상태로 눈 쌓인 밤을 헤매다 겨우 목숨을 구한 최양업 신부는 경신박해를 피해 경남 언양 간월산 죽림굴에 숨어 지냈다. 설상가상으로 끔찍한 재해가 조선을 덮쳤다. 콜레라로 전국에서 4만 명 이상이 죽었다. 신자 30여 명도 포함됐다. 기근으로 도둑들이 기성을 부렸고 교우촌은 포졸들과 도둑들의 먹잇감이 됐다.

박해가 잦아지자 최양업 신부는 리브와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사목 보고서 형식의 편지를 쓴 후 죽림굴 교우촌을 중심으로 신자들을 사목 방문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기 위해 낮에 30~40㎞ 길을 걸어 교우촌을 찾았다. 박해자들에게 들키지 않게 밤에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미사를 봉헌한 후 날이 새기 전에 몰래 그곳을 떠났다. 최 신부의 복사였던 조화서(베드로)는 “이 시기 최 신부가 쉰 날은 한 달에 나흘 밤을 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최 신부는 박해로 풍비박산이 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밤낮없이 신자들을 돌봤다. 그의 헌신으로 경상도 남부 지방 교우촌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하게 됐다. 신자들은 성사로 힘을 얻었고 폐허가 된 교우촌을 재건하거나 새로운 삶의 자리로 옮겨갔다.

경상도 지역 교우촌 사목 방문을 마친 최 신부는 경신박해로 연락이 끊긴 대목구장 베르뇌 주교를 만나기 위해 상경길에 올랐다. 여느 해처럼 사목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서울로 가는 길에 자신의 사목지에 들러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다.

그러던 와중에 1861년 6월 15일 배론신학교에서 66~70㎞(170~180리) 떨어진 한 교우집에서 푸르티에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4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과로와 장티푸스였다.

푸르티에 신부는 최 신부가 임종하기 8~9시간 전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죄경(赦罪經)을 하고 병자성사를 주기에 늦지 않았다. 하지만 최 신부는 의식을 거의 잃어 마지막 고해성사를 볼 수 없었다. 숨을 거둘 때까지 최 신부는 무의식 속에서 “예수 마리아”를 불렀다. 그의 임종을 지킨 이는 푸르티에 신부와 최 신부의 복사 조화선, 그리고 교우집 가족들이었다.

그의 죽음은 조선 전체의 초상이었다. 대목구장이던 베르뇌 주교는 “12년간 거룩한 사제의 모든 본분을 지극히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감화하고 성공적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애도했다.

다블뤼 주교는 “선을 행하기 위해 그가 지녔던 보기 드문 덕성, 지칠 줄 모르는 열성, 재능, 능력 등등 선교지가 그를 잃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정말 엄청난 고통이다. 그는 모두에게 애석한 마음을 갖게 했다. 당장에는 아무것도 그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애통해 했다.

최양업 신부와 절친했던 페롱 신부는 “하느님은 우리 불쌍한 조선을 좀 가혹하게 취급하시는 것 같다. 조선에 새 선교사가 오면 하느님은 즉시 우리 중에서 순진한 사람을 데려가신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메스트르 신부가 돌아가셨다. 올해는 더 귀중한 사람을 거두셨다. … 그의 죽음은 모든 교우를 매우 슬프게 만들었다. 그들의 애도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토마스 신부의 지식과 그의 강론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게 될 때 그들의 슬픔은 더욱 커질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슬퍼했다.

최양업 신부가 어디에서 선종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누리방의 최양업 신부 약전에는 “문경읍 또는 진천 배티 교우촌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 선종지에 이견이 있는 까닭은 그의 죽음에 관한 구체적 목격 증언이 없기 때문이다. 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임종을 지켜봤던 푸르티에 신부조차 최 신부의 선종지를 “저의 산(배론)에서 170리 떨어진 어떤 교우집”이라고 적고 있다.

최양업 신부의 가족과 후대 신자들 이에 내려오는 전승을 종합하면 ‘문경 혹은 진천 선종설’로 압축된다. 문경 선종설은 문경이 배론에서 170여 리 길에 위치하고, 문경에서 소고기를 잘못 먹어 약국을 하는 평창 이씨 교구 집에서 돌아가셨다는 최양업 신부 조카의 최상종(빈첸시오)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진천 선종설’은 배티 교우촌을 중심으로 구전돼 온 전승으로 ‘배티에서 선종했다’는 설과 ‘문경에서 병을 얻어 서둘러 진천으로 와서 선종했고, 배티에 시신을 가매장 했다’는 설이 있다.

이에 청주교구 배티성지 누리방에는 “진천의 한 공소(진천 원동 혹은 미확인, 경상도 문경 진안리 주막설은 잘못임)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안동교구는 경북 문경 진안리 오리터에 ‘최양업 신부 선종지’인 진안성지를 조성해 놓았다.



▲ 경북 문경에 조성된 진안리 성지 입구.



▲ 진안리 성지 내 십자가와 안내판.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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