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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순교자들] ⑧ 홍도근(요한 세례자) 신부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5-19 09:59:49 | 조회 : 19

가톨릭평화신문 2017. 05. 21 발행 [1415호]



[평양의 순교자들] ⑧ 홍도근 요한 세례자 신부


다가오는 위협에도 양 떼 곁 지킨 목자



▲ 먼저 사제품을 받은 홍건환 신부, 주례 주교인 오세아 주교와 함께한 홍도근(오른쪽) 부제.



사제품을 받은 직후 홍도근(오른쪽) 신부와 홍건환 신부.



▲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 재학 시절의 홍도근(뒷줄 왼쪽) 신학생.



홍도근(요한 세례자) 신부는 별명이 ‘에디슨’일 정도로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사제다. 과학 분야의 책을 주로 탐독했고, 대신학교 시절엔 전기 배선 등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도맡았다. 사제품을 받은 뒤에는 헌신적으로 사목했던 ‘영웅적 믿음’의 소유자였고, 전교에 충실했던 목자였으며, 죽기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간 사제였다. 


 

타고난 집중력으로 전기 기술 등 독학

홍도근 신부는 1915년 4월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현 평북 피현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건일(마르코) 슬하 2남 2녀 중 차남이었다. 같은 교구 홍건환 신부가 그의 숙부다.


1930년 4월 동성상업학교에 입학한 그는 3학년 때 신학생 반인 을조가 따로 편성되면서 신학 교육에 필요한 소양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그는 성적이 우수한 편이었는데, 특히 과학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전기나 전화, 라디오 관련 서적들을 주로 읽었다. 이때부터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걸 잊어버리곤 했다. 한번 일에 몰두하면, 기도나 식사 시간까지 잊었고 규칙적인 공동 일과에도 자주 빠져 지도 신부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독학으로 전기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됐고 관련 기술도 익혀 신학교 내 자잘한 전기시설이나 배선 등을 고치는 일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동성상업학교에서 소신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덕원신학교에 입학, 대신학교 과정을 마친 뒤 1940년 11월 8일 평양 관후리 주교좌성당에서 평양대목구장 윌리엄 오세아 주교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다. 숙부 홍건환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지 7개월 뒤였다.


수품 이후 홍도근 신부의 사목 활동은 잘 알려져 있다. 비록 9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6개 본당에서 사목하면서 헌신적으로 살았다. 교구장 주교에 대한 순명 정신도 투철해 6개 본당을 전전하면서도 아무런 불평도 내비치지 않았다. 1940년 11월 수품 직후 대신리본당에 보좌로 부임해 1년 4개월을 살았고, 비현본당 주임으로 1년 2개월, 기림리본당 주임으로 1년, 강계본당 주임으로 7개월, 다시 기림리본당 주임으로 돌아와 1년을 살았고, 끝으로 영유본당에 부임해 4년 2개월 동안 사목했다.


본당 사제로 사는 동안 홍 신부는 헌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영유본당 주임 시절엔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양로원 운영에 고심하면서도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운영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양로원 식량 확보에 어려움이 컸는데, 홍 신부는 수도자들과 함께 자신들이 먹는 것도 줄여가며 노인들을 봉양했다. 또한, 본당 신자들이 사제나 수도자들을 위해 곡식이나 식량을 가져오면 다 양로원으로 보냈다.

 

학생들에게 수학·전기도 가르쳐

홍 신부는 특히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깊은 사목적 관심과 사랑을 보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물리나 수학, 전기, 라디오 등에 대한 지식을 전수했고, 때로는 실험까지 해 보이며 가르쳤다. 그래서 부임하는 본당마다 홍 신부를 만나는 어린이나 학생들은 사제가 되면 다들 홍 신부처럼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되는 줄로 알 만큼 홍 신부는 학구적 면모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홍 신부는 학생들에게 사제 성소의 씨앗을 심어주려고 애를 썼다.


반면 건망증이 심했다. 신학교 시절, 나들이를 간다면서 덕원에서 원산까지 실내화를 신고 가기도 했다. 또 영유본당 주임 시절 혼배성사를 베풀면서 신랑, 신부에게 혼배할 원의를 묻지 않았다가 신혼부부가 성당을 떠난 뒤에 이를 깨닫고는 뒤쫓아가 정거장에서 혼배할 원의를 물었다는 일화를 남겼다. 한 번 쓴 연필을 수시로 잃어버려 수십 개의 연필을 깎아놓고 필요한 곳에 놓고 썼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공산 치하에서의 힘겨운 사목 활동도 1949년에 접어들며 점차 막바지로 접어든다. 공산 정권의 교회 탄압은 노골화했다. 홍 신부는 신자들을 안정시키려고 애를 쓰며 목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피신 권유에도 신자 위해 기꺼이 수난 감내

1949년 5월 중순쯤 평양 관후리본당에서 청년 피정을 지도하고 돌아온 홍 신부는 신자들에게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주교가 불법 피랍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태의 심각성과 위급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지만,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성무를 수행했다. 본당 신자들은 언제 자신들의 사제를 공산당에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하며 홍 신부가 외출할 때마다 함께했지만, 홍 신부는 신자들의 이 같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과 같이 행동했다. 홍 신부 주변에는 이미 영유 내무서원들이 늘 붙어 다니며 감시했다.


마침내 비극의 날이 왔다. 대신리본당 주임 박용옥 신부 등 평양 시내에 남았던 사제들이 체포된 지 사흘이 지난 1949년 12월 10일 밤 12시를 넘겨 영유 내무서원이 놀러 왔다는 핑계를 대고 사제관에 들어와 홍 신부와 사제관의 구조 등을 둘러보고 갔다. 홍 신부는 수난이 닥칠 것을 눈치채고 성당에 모셔진 성체를 모두 거둬들이고 연행에 대비했다. 이때 홍 신부의 시중을 들던 한 젊은이가 급히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영유분원으로 달려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렸다. 이에 수녀들이 사제관으로 달려와 홍 신부에게 성체를 모신 뒤 “일시로라도 몸을 피하시라”고 애원하자, 홍 신부는 “양을 버린 목자를 보았느냐?”고 반문한 뒤 이들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날 새벽을 뒤흔드는 듯한 성당 종소리에 놀란 수녀들과 신자들이 사제관으로 몰려갔지만, 홍 신부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 시각이 12월 11일 새벽 5시였고, 이후 홍 신부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다만 평양교구 사제인 장선흥(라우렌시오, 1914∼1958) 신부의 「붉어진 땅의 십자탑」(가톨릭출판사) 등의 기록에 따르면, 홍 신부는 그날로 평양에 압송돼 평양 인민 교화소 특별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가 10ㆍ20 평양 수복 직전에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자료 제공=평양교구 사무국




홍도근 신부는

■  1915년 4월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 출생  

■  1935년 동성상업학교 졸업, 1940년 덕원신학교 졸업

■  1940년 11월 8일 평양 관후리 주교좌성당에서 사제 수품

■  1949년 12월 11일 새벽 5시 북한 영유 내무서원들에게 피랍돼 행방불명

■  소임 : 평양 대신리본당 보좌, 비현ㆍ기림리ㆍ강계ㆍ영유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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