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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순교자들] (13) 석원섭(마르코) 신부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6-30 14:03:00 | 조회 : 141

가톨릭평화신문 2017. 07. 02발행 [1421호]

 


 
[평양의 순교자들] (13) 석원섭(마르코) 신부


동기 두 신부, 짧은 사목 기간에도 신자 위해 힘 써


▲ 석원섭 신부가 사목했던 강계성당의 아름다운 외관,




유머·친화력으로 신자에게 다가가
 

석원섭 신부는 1919년 평안남도 성천군 사가면(현재 사가면은 없어짐)에서 태어났다. 동기인 이경호 신부와 마찬가지로 숙천본당 출신이다. 조용한 성품의 이 신부와 달리 남자다운 기개와 호탕한 성품을 지녔고, 친화력도 뛰어났다. ‘사목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는 게 주위 평가였다. 유머가 풍부했고, 어린이들을 좋아했으며, 이들에게 성소를 심어 주는 데 노력했다.
 

석 신부는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를 거쳐 덕원신학교(대신학교)를 졸업했다. 신학교 재학 시절의 석원섭 신학생은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라틴어 실력도 매우 부족했다. 하지만 성격이 활발하고 도량이 넓어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고 남을 질책하는 일도 없었다. 축구나 권투 같은 운동을 즐겼고, 윷놀이도 즐겼다. 1947년 12월 27일 관후리 주교좌성당에서 이 신부와 함께 홍 주교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뒤 관후리본당 보좌에 임명된 석 신부는 폐가 나빠졌으나 강한 의지로 꿋꿋이 사목 생활을 해 나갔다. 특히 미사 복사를 하는 어린이들을 남달리 사랑했으며, 주일학교 시간이면 풍부한 유머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청년회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합창 지도를 즐겨 성가대원들도 석 신부를 많이 좋아했다. 아울러 관후리 주교좌성당 건립 마무리에도 온 힘을 기울였다.


 

강계본당 발령 후 급격히 건강 악화
 

1년간 관후리본당 보좌로 사목한 석 신부는 1949년 1월 강계본당 주임으로 부임한다. 평양대목구 최북단 본당인 강계, 중강진 두 본당을 함께 사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그해 4월 평양으로 돌아와 기림리 주교관에서 요양했다. 그러다가 홍 주교와 사제들이 피랍되자 병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7월 초 강계본당으로 돌아갔다. 체포되지 않은 사제들이 각자의 본당을 사수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석 신부는 본당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긴 여행의 후유증으로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렸다. 의식이 흐릿해져 자리에 눕게 됐고, 본당 청년들과 간호사들이 교대하며 간호했다. 그러던 중 석 신부는 7월 8일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사제관에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갔다. 당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끌려간 석 신부의 건강 상태로 미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설사 살아남았더라도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 전ㆍ후에 처형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원섭 신부는

■ 1919년 평안남도 성천군 사가면 출생

■ 1940년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졸업

■ 1947년 덕원신학교(대신학교) 졸업

■ 1947년 12월 27일 평양 관후리성당에서 사제 수품(홍용호 주교 주례)

■ 1949년 7월 8일 강계성당에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피랍돼 행방불명

■ 소임 평양 관후리 주교좌본당 보좌,

강계본당 주임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자료=평양교구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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