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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사 특별 기획전] (4) 벽을 넘어선 희망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8-11 11:17:37 | 조회 : 567

가톨릭평화신문 2017. 08. 13발행 [1427호]



[한국 천주교회사 특별 기획전] (4) 4막. 벽을 넘어선 희망


박해 피해 만난 ‘신앙의 벗’들과 교우촌을 이루다



천주교에 대한 조선 조정의 박해는 길고도 가혹했다. 여러 박해를 거치면서 양반, 중인, 양인, 천민 신분의 순교자들도 늘어났다. 한 기록에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신자의 3분의 2가 여성이었고, 3분의 1이 천민이었다”고 한다. 백성들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한 존재’라는 천주교의 가르침에 감격했다. 그들이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이유는 바로 천주교 안에서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박해로 인해 고향을 떠난 신자들은 인적 드문 산속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공동생활을 했다. 교우촌 즉 한국의 카타콤바가 바로 그것이다. 교우촌에서 생활하던 신자들은 박해가 닥쳐올 때마다 다른 곳으로 이주해 새로운 교우촌을 형성했다. 그들은 옹기 굽는 일과 담배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옹기장사는 박해를 피해 전국을 다니며 소식을 전하기에도 쉬웠고 성물을 감추기에도 적합했다. 신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앞에 평등한 존재라는 진리를 실천하며 서로를 ‘신앙의 벗’(敎友)이라 부르며 지냈다. 목숨을 위협받으며 가난한 가운데에도 어려운 이웃과 부모 잃은 아이들을 함께 돌보았던 삶은 하늘의 뜻을 땅 위에서도 이루려는 노력이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병인년 첨례표(丙寅年瞻禮表)


첨례표는 교회에서 기념해야 할 대축일, 축일, 기념일 등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한 장짜리 축일표이다. 박해 시기 신자들의 실질적인 신앙생활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로, 일반 달력과 달리 예수의 탄생ㆍ죽음ㆍ부활ㆍ승천 등 그리스도의 삶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조선 천주교회의 첨례표 사용은 1784년 신앙 공동체 설립 직후부터 시작됐다. 1801년 박해 기록인 「사학징의」에도 언급된 것으로 보아, 첨례표는 초창기 때부터 널리 보급됐음을 알 수 있다. 신자들은 박해 상황에서 사제가 없을 때나 함께 모여 기도하기 어려울 때 첨례표를 보며 교회 전례력에 따라 기도했다. 또한,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인식하는 데도 사용해 일상생활 안에서 신앙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갔다. 이러한 경험들은 신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전해졌다. 예를 들어 신자들이 6월 성령 강림절 전후에 심었던 담배를 ‘강림초’라고 부르거나 “봄 가뭄이 6월 29일 베드로 바오로 첨례날까지 계속되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속설이 농촌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됐다.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功課)

초기 신자들이 일상에서 바치던 기도문을 모아 놓은 책. 기도서는 조선 천주교회 설립 직후부터 존재했는데 박해시대 때 신자들의 기도생활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 주는 역할을 했다.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 특히 돌아가신 이를 위한 기도가 있어 이웃들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

이 기도서는 「천주경과」 「천주성교일과」 「수진일과」 등 한문 기도서를 번역해 조선의 상황에 맞게 다시 엮은 것이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L.M.J. Imbert, 1796~1839) 주교가 1838년쯤 초판을 완성한 이후 여러 주교와 신부의 참여를 거쳐 1862년에서 1864년 사이에 4권의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천주성교공과」는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심 역할을 하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재의 「가톨릭 기도서」로 새롭게 태어났다.

프랑스 교회 선교지인 ‘가톨릭 선교’는 조선 교회의 실상을 다양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가톨릭 선교(Les Missions Catholiques)

‘가톨릭 선교’에 소개된 이 그림은 ‘조선에서 남녀가 따로 앉아 미사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조선의 신분제 사회 안에서 남녀의 구별이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박해 시기 선교사들은 조선을 소개하는 그림과 편지를 프랑스로 보내 조선인 신자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조선의 민속과 문화를 유럽에 생생하게 전했다.

이 책에 소개된 편지와 사진을 통해 당시 조선인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다. 박해 시기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교우들은 어느 교우촌에 신부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며칠 밤을 걸어서라도 찾아와 미사와 기도를 함께 드렸다. 성직자는 신자를 찾아다녔고, 신자는 성직자를 쫓아다녔던 상황이었지만 믿음의 기쁨을 이웃에게 실천하며 신앙생활로 이어나갔다. 이러한 사진과 선교사들의 편지는 순교자들의 행적과 영성을 후대에 전하는 큰 역할을 했다.

‘가톨릭 선교’는 프랑스 리옹의 포교사업후원회(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Faith) 기관지로 1868년부터 발행해 프랑스 선교사들이 파견된 각국의 소식들을 자세하게 실었다.


▲ 리델 주교가 그린 상복 입은 선교사의 모습. 모델은 제4대 조선대목구장인 베르뇌 주교이다.




리델 주교 스케치- 조선 신자들의 모습

제6대 조선대목구장 리델(F.C. Ridel, 1830~1884) 주교는 조선 신자들의 모습을 여러 장의 그림으로 남겼다. ‘상복을 입은 선교사’는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S.F. Berneux, 1814~1866) 주교를 모델로 한 것이다. 상중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조선 문화는 선교사들의 활동에 큰 도움을 줬다. 조선말도 서툴고 생김새도 다른 서양 선교사들이 상복을 입고 신자를 찾아 어디든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리델 주교는 충청도 지방 교우촌에 사는 열세 살 ‘소년’을 그렸다. 이 댕기 머리 소년은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신앙을 고백해 주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한다. 리델 주교는 이 소년의 신앙을 전하기 위해 그를 그렸다.

리델 주교는 1866년 박해 시기에 조선의 문화와 신자들의 생활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러한 그림을 통해 조선 선교지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리델 주교가 그린 열세 살의 이 소년은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신앙고백을 했다.


해미성지에서 발굴한 순교자들의 십자가와 묵주 유품.



순교자의 유물

프랑스 선교사들이 성물들을 조선에 꾸준히 들여왔기에 초기 신자들은 성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신앙생활을 더 굳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교우촌과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많은 성물이 발굴됐다. 특히 여사울, 계촌리, 삽티리, 해미와 골배마실 교우촌에서 십자가, 묵주, 기적의 메달 등이 다수 출토됐다. 성물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많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기적의 메달에는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성모님께 의탁하는 이러한 기도는 신자들 속으로 퍼져나가 박해 시대에 고난을 견디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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