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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23) 중국 복안에서 체류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9-22 12:11:05 | 조회 : 1966

가톨릭평화 신문 2017. 09. 24발행 [1433호]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23) 중국 복안에서 체류


모방 신부의 조선 선교 자원, 주교의 조선행에 ‘걸림돌’ 돼 


복건대목구 주교좌 성당 터에 세워진 중국 복건성 풍동교구 정두촌 성당.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곳에서 58일간 머물렀다.


▲ 복건대목구 산타크루즈 신학교 터에 세워진 계전촌 천주당.




중국 복건성 해안 도시 복안현(福安縣)은 스페인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선교지였다. 복건성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이는 박해를 피해 남경에서 장주(州)로 온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복주(福州), 흥화(興化), 천주(泉州) 등 복건성 남부 연안 지역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복안에는 도미니코회 안젤로 코치(Angelo Cocchi, 1597~1633) 신부가 1632년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후 1633년 도미니코회 후안 바우티스타 데 모랄레스(Juan Bautista de Morales, 1597~1664) 신부와 스페인 프란치스코회 안토니오 데 산타 마리아 카바예로(Antonio de Santa Maria Caballero, 1602~1669) 신부가 함께 선교해 많은 이들을 입교시켰다. 그중 한 명이 훗날 도미니코회 회원으로 중국인 첫 사제요 주교가 된 나문조(羅文藻, 1616년~1691)이다.

상해가 우리나라의 부산이라면 복안은 거제 정도 된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자신의 여행기에 소개한 것처럼 지금도 복안 사람들은 상인이요 어부이며 뱃사람들로서 자부심이 강하고 대담하다. 또 주교가 직접 본 것처럼 지금도 주민들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조개와 고기잡이를 하고, 조선소와 배 수리소에서 생계를 잇고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3년 3월 1일 복안에 도착했다. 일행은 선교사 6명과 중국인 연락원 8명 등 모두 14명이었다. 주교의 일행은 곧장 복건대목구장이 거주하는 주교관으로 갔다. 당시 중국 교회는 의례논쟁으로 조정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었지만, 복안에서는 그 강도가 덜해 조심스럽게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에서 의례논쟁을 시작한 곳이 바로 복안이었다. 이 마을은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도시였다. 주교를 비롯한 모든 성직자와 신학생, 수도자들이 모두 도미니코회 회원들이었다.

1833년 당시 복건대목구장은 로케 호세 카르페나 디아즈(Roque-Jose Carpena Diaz, 1760~1849)주교였다. 그는 스페인 무르시아 출신의 성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으로 1791년 중국에 파견돼 1802년 복건대목구 부주교이자 테베스테(Theveste)의 명의 주교로 임명됐다. 1803년 2월 말 마카오에서 주교품을 받은 그는 병으로 사임한 호세 칼보(Jose Calvo, 1739~1812) 주교를 이어 복건대목구장이 됐다.

74세의 디아즈 주교는 14명이나 되는 손님을 친절하게 맞아줬다. 극진히 대접하고 선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공급해 주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돌봐줬다. 브뤼기에르 주교를 비롯한 선교사들에게 그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833년 11월 이곳에 도착한 조선 선교사 샤스탕 신부도 디아즈 주교에게 신세를 졌다.

“그분은 매우 가난합니다. 그렇지만 재산이 얼마 없으면서도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줍니다. 이따금 주교님이 자기에게 지정된 돈이 우리를 위해서나 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몹시 걱정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여행기」중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곳에서 1833년 3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58일간 머문다. 주로 그가 머문 곳은 주교관과 신학교였다. 주교관은 복안현 시내에 있지 않고 정두촌(頂頭村)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서양 선교사들은 이곳을 ‘팅 타오’(Ting-tao) 또는 ‘타우 타오’(Tau-tao), ‘탄 타오’(Tan-tao)라 불렀다. 정두촌은 복안 장계강(長溪江) 하구 백마(白馬) 항구에 있는 마을로 강과 바다를 통해 인접한 여러 마을과 중국의 다른 지역을 가기에 적합한 곳이다.

복안은 높은 산과 수로가 많아서인지 안개가 잦고 습했다. 주교관과 함께 있던 주교좌성당은 오늘날 복안시 하백석현(下白石縣) 정두촌(頂頭村) 등강로(騰江路) 148에 자리하고 있다. 목조 건물이던 당시 주교관과 성당은 1928년 태풍으로 소실되고 1932년 지금의 성당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여성들은 열심이고 모두 그리스도교와 선교사들에게 강한 애착이 있다”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말처럼 지금도 삼종 때마다 성당에 와서 묵주기도를 하는 여성 교우들이 많다.

당시 복건대목구 산타크루즈 신학교 터에는 복안시 계전촌(溪塡村) 천주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증언대로 경사진 언덕 위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에는 수려한 골짜기가 있고 그 아래로 복안 강이 흐르고 있다. 당시 복안 신자들은 이곳을 “작은 로마”라고 불렀다. 산타크루즈 신학교는 안타깝게도 브뤼기에르 주교가 떠난 다음 해인 1834년 문을 닫았다. 1813년 개교해 폐교할 때까지 중국인 사제 7명과 수많은 교리교사를 배출했다.

복안에 도착한 지 8일째 되던 1833년 3월 9일 사천(四川)대목구로 파견된 모방 신부가 “조선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밝혔다. 주교는 모방 신부에게 자신이 결정권자가 아니라며 사천대목구장 루이 퐁타나(Louis Fontana, 1781~1838) 주교의 허가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 일과 관련해 3월 20일 한 포르투갈 선교사가 보낸 항의 서한을 받았다. 이 익명의 편지에는 “중국 강남 지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브뤼기에르 주교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신과 함께 머물던 포르투갈 선교사 중 한 명이 모방 신부의 조선 선교 자원 소식을 듣고 남경교구에 알린 것이다. 이때부터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으로의 여행을 노골적으로 훼방 놓기 시작한다. 역설적이지만 모방 신부가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에 첫 걸림돌이 됐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3년 4월 23일 남경까지 자신을 태워줄 배를 타러 갔고, 4월 27일 남경을 향해 출항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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