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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25) ‘북경에서 조선 신자 만나겠다’는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10-12 15:22:29 | 조회 : 199

가톨릭평화신문 2017. 10. 15발행 [1435호]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25)

‘북경에서 조선 신자 만나겠다’는 꿈을 접다


험난한 여정과 중국 교회의 비협조로 고대하던 만남은 수포로…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3년 7월 20일 소주에서 북경으로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왕 요셉 외에 라틴말을 할 줄 아는 40세가량인 양 요한과 노인인 도 바오로를 길 안내인으로 고용했다. 주교는 해로를 이용해 북경까지 가길 희망했으나 중국인 신부가 “선장과 선원들이 도무지 미덥지 않다”며 “육로로 갈 것”을 권했다. 왕 요셉도 “배에 문제가 생겨 주교님이 익사하시는 날엔 조선은 끝장날 것”이라며 바다로 가는 것을 말렸다. 그래서 주교와 길 안내인들은 북경까지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주교 일행은 배로 황제 운하와 양자강을 따라 남경을 지나갔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양자강의 풍랑이 심해져 7월 31일 하선했다. 이후 주교는 약 보름 동안 절강성에서 산서성 접경까지 펼쳐진 평야 지대를 도보로 여행했다. 바로 화북평원이다. 안휘성과 하남성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길이었다. 약 1180㎞에 달하는 여정이었다.

중국의 7~8월은 불볕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때다. 도 바오로가 당나귀 두 마리와 손수레 두 대를 구해 왔다. 그러는 동안 주교는 길 안내인들에게 중국식으로 마시고, 먹고, 기침하고, 코 풀고, 걷고, 앉는 법을 배웠다. 수레 한 대에는 주교와 연락원 한 명이 타고, 나머지 수레에는 짐을 실었다. 남은 두 사람은 수레를 끄는 당나귀에 올라앉아 마부 노릇을 했다. 일행은 주교를 가난한 중국인으로 꾸몄다. 더러운 바지와 내의를 입히고 낡은 밀짚모자를 씌웠다. 또 검정 천으로 주교의 눈을 가렸다. 이 괴상한 행색으로 여행 내내 중국인들의 더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발자국마다 만나는 비, 나쁜 길, 조수의 간만, 진창을 만나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수레에 실려 가는 것이 아니라 수레를 끌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걸어야만 했다. 나는 불편한 중국 신발과 긴 양말 대용의 장화 때문에 곧바로 발에 상처를 입었다.… 걷기 시작한 첫날부터 나의 몸 상태가 악화됐다. 피로하고 무더운 데다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온갖 어려움을 겪은 결과 심한 복통을 느꼈다. 이질 증상이 분명했다. 즉각 열이 오르는 바람에 나는 매번 눕거나 앉아야만 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에겐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렇게 해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안내자 말로, 주막에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의원을 부르는 것은 더욱 큰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교우 집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곳의 교우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되도록 빨리 직예(直隸)로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 중에서)

육로 여행 시작과 함께 이질에 걸린 브뤼기에르 주교는 갖은 고생을 했다. 고열로 목이 타서 입술이 말라붙어 손으로 떼어내야만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으나 중국인 일행은 예법에 어긋난다며 물을 주지 않았다. 소심한 길 안내인들 때문에 주교는 주막에 들어가면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기진맥진해 작열하는 햇볕에 거의 질식 상태가 돼 그늘에 가서 앉으려면 일행은 “주교가 쉬어야 할 곳은 햇볕 아래, 쓰레기더미”라며 “조선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순교할 것인데 도중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더위와 허기, 갈증과 발열 따위로 인한 고통을 견뎌 내야 한다”고 말하며, 주교에게 고행을 강요했다.

1833년 8월 13일 주교 일행은 황하를 건너 산동성으로 들어갔다. 주교 일행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을 태운 나룻배를 탔다. 황하를 건너 배에서 내릴 즈음 주교는 갑자기 숨이 막혀 20여 분 동안 발작하는 사람처럼 먼지 속을 뒹굴었다. 이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몰려들자 안내인들이 주교를 급히 옮겼고, 바람이 잘 통하는 데서 공기를 마시게 해야 한다며 햇볕이 내리쬐는 밭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주교는 한 발자국도 옮겨 놓을 수 없는 상태였다. 주교는 3일 동안 널빤지에 눕혀진 채 있어야만 했다. 굶주리고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8월 26일 산동과 직예(直隸) 접경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두 남자가 주교를 끌고 갔다. 이들은 교우였다. 앞서가던 왕 요셉이 이들에게 주교의 인상착의를 말해 준 것이다. 극도로 쇠약해진 브뤼기에르 주교는 교우촌에서 3주 동안 걷지도 앉지도 못한 채 온종일 침대에 누워 지냈다. 주교는 이곳에서 한 달을 요양한 뒤에야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 일행이 길을 나서려 하자 중국인 신부와 교우촌 신자들이 반대했다. 서양인 주교가 북경이나 만주로 가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산서, 호광, 마카오로 갈 것을 종용했다. 일행 중 양 요한도 이들을 지지했고, 왕 요셉만이 주교의 편을 들었다.

이에 브뤼기에르 주교는 북경에 있는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9월 3일 왕 요셉과 교우촌 대표들을 북경으로 보냈다. 교우촌 대표들은 페레이라 주교에게 브뤼기에르 주교를 돕지 말라고 만류했다. 이 장면을 왕 요셉이 생생히 목격했다. 이후 페레이라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더는 돕지 않았다.

9월 22일 북경에 갔던 사람들이 페레이라 주교가 쓴 편지 한 통을 갖고 돌아왔다. 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교님은 산서로 가셔야 합니다. 주교님의 목숨은 지금 하느님과 중국인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조선 선교지를 위해 사용한 모든 비용을 포교성성에서 지불해 주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됩니다. 나머지는 주교님의 제자가 말씀드릴 것입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 편지를 읽은 후 북경으로 가서 조선 신자들을 만나겠다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3년 9월 29일 산서를 향해 직예를 떠났다.

브뤼기에르 주교 연구 권위자인 조현범(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직예 교우촌이 오늘날 하북성 헌현(獻懸)교구청 자리라고 추정한다. 헌현교구장 이봉귀(李逢貴) 주교는 “1856년 헌현대목구가 설립된 후 예수회 선교사들이 들어와 활동했지만 대목구 설립 이전에는 유명한 교우촌이었다”고 알려줬다. 교구청에는 예수성심주교좌성당이 있다. 20세기 저명한 신학자요 고생물학자인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도 한때 이곳에서 활동했다. 글


·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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