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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32) 마가자로 향하다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12-21 09:25:00 | 조회 : 784

가톨릭평화신문 2017. 12. 17 발행 [1444호]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32) 마가자로 향하다



“이중 삼중의 위험이 닥쳐와도 선교지에 이를 때까지 달릴 겁니다”




▲ 브뤼기에르 주교가 서만자에 머물 당시 짓고 있던 서만자 성당 전경.




1835년 1월 29일 브뤼기에르 주교는 왕 요셉을 다시 북경으로 보냈다. 왕 요셉은 2월 7일 북경 남당에서 유진길(아우구스티노)과 조신철(가롤로), 김 프란치스코를 만났다. 왕 요셉은 이들에게 “조선에 가겠다”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확고한 의지를 전했다.


조선 신자들이 반기지 않아

이에 유진길을 비롯한 조선 밀사들은 2월 15일 두 통의 편지를 써서 왕 요셉에게 전했다. 하나는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재위 1831~1846)에게 쓴 서한이고, 다른 하나는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보낸 편지였다. 유진길 등은 교황에게 “조선에 들어오려는 유럽인 선교사들을 맞이하는 데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에게는 “주교님께서 친히 소원하시어 저희 모두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동방(조선)에 오겠다고 엄숙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이런 일을 사람의 힘으로 바랄 수나 있을까요? 그러니 저희는 즉각 주교님 앞으로 가야겠습니다만 아직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며 교황에게 한 약속과 정반대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유진길 일행은 “같은 해 음력 9월과 11월, 3월에 자신과 모방ㆍ샤스탕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겠다”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제안을 거부했다. 밀사들은 대신 “매해 음력 11월에 선교사 한 명씩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유진길 일행은 3월 1일 조선으로 귀국하기 위해 북경을 떠났다.


북경교구 페레이라 주교의 방해

조선 신자들이 브뤼기에르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북경교구 페레이라 주교의 방해가 컸다. 페레이라 주교가 조선 밀사들에게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조선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요동 지역 신자들에게 “자신이 쓴 허가증을 지니지 않은 그 어떤 선교사도 받아들이지 말 것이며 이를 어길 경우 어떤 처벌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그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비롯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그 어떤 허가증도 주지 않았다.

이에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안전한 입국을 위해 요동 지역을 조선대목구 관할로 편입시켜 달라고 포교성성 장관에게 요청했다. “만일 요동 지방 동부가 조선대목구에 합해진다면 이런 어려움들은 더 없을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조선 입국의 안전한 때를 기다리는 동안 요동에 세워져야 할 신학교에서 조선어 공부를 하거나 교회 직무를 수행한다면 저희처럼 이토록 무익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1835년 8월 7일 서만자에서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에게 보낸 브뤼기에르 주교 편지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는 북경의 페레이라 주교가 도와주지 않으면 신자들의 집에 머물지 않고 압록강 변문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국경에서 인내와 끈기로 조선 신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주교는 먼저 연락원 한 명을 산서대목구로 보내 “주교가 원하면 조선 국경 지대에 가서 집을 한 채 빌려 놓겠다”고 약속한 회장을 서만자로 데려오게 했다. 그는 산서대목구장 살베티 주교를 오랫동안 도와주던 신자였다. 주교를 도와줄 산서 회장과 일행 2명이 1835년 5월 11일 서만자로 와서 주교에게 여행 경비와 집 임대 자금을 받아 이틀 후 국경 지대로 떠났다.

1835년 6월 17일 밤 서만자에 긴급한 전갈이 왔다. 지방 태수가 서만자에 유럽인 선교사들이 은닉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선화부(宣化府) 관장에게 즉각 그들을 체포해 압송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와 설 마태오 신부는 교회와 관련된 모든 물건과 유럽인이 있다고 의심을 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깊은 토굴에 숨겼다. 그리고 주교도 새벽에 한적한 토굴에 몸을 숨겼다. 몇 달간 토굴 생활을 하면서 브뤼기에르 주교는 동상과 함께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서만자의 많은 신자가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했다. 이런 와중에도 서만자 신자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당 건축을 완공했다.

1835년 9월 8일 왕 요셉이 서만자에 도착했다. 그는 걷기는 고사하고 말이나 수레를 타고 길을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만큼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왕 요셉은 제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없을 만큼 다쳤지만, 조선 국경까지 주교와 동행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국경 지대에 집을 장만하러 갔던 산서 회장 일행이 10월 1일 서만자로 돌아왔다. 그들은 장이 서는 봉황성 변문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넓은 집 한 채를 구했다. 때마침 산서대목구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자금을 들고온 안내인 한 명이 조선 국경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 안내인을 훌륭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바로 ‘장희’이다. 모방 신부 역시 장희를 “훌륭한 신자”라면서 “이 교우는 주교님을 변문까지 모시려고 산서성에서 1500리(약 590㎞) 떨어진 서만자까지 왔다”고 밝혔다. 장희는 마가자(馬架子) 출신이었다. 모방 신부에 따르면 브뤼기에르 주교는 산서대목구장이 보내 준 안내원 장희의 친척이나 부모 집에서 15일쯤 묵으려 했다.


서만자에서 조선 국경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5년 10월 7일 조선 국경으로 가기 위해 서만자를 출발했다. 주교는 말 세 필과 손수레 같은 수레를 구해 작은 대상처럼 행색을 갖췄다. 일행은 도적과 맹수들을 막기 위해 완전 무장을 했다. 조선으로 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마지막 여정인 이 길에 동행한 이들은 중국인 고 신부와 그의 복사 2명, 마가자 출신의 훌륭한 교우 장희, 국경 지역에 장만한 집을 알려줄 산서 회장,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왕 요셉 등이었다.


하느님의 섭리에 맡깁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아주 위태롭습니다. …
나는 나의 운명을 하느님의 두 손에 맡겼습니다.

나는 하느님 섭리의 품 안에 내 한 몸 던져, 중도에서 죽거나 불가항력에 의해 저지당하지 않는 한,

 내 달음박질의 종착지에 이를 때까지 머리를 숙이고 위험들을 가로질러 달릴 것입니다.”

(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 끝부분)



▲ 서만자 마을 주민 가운데는 흙집과 인공 토굴에 사는 이들이 많다. 사진은 서만자 마을


내몽고 적봉 깊은 산골에 터한 마자가 교우촌으로 가는 길은 황토와 민둥산만 보일 정도로 척박하다.



▲ 서만자 신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열심이다. 개발 보상금을 성당 건축 기금으로 다 내놓을 만큼 헌신적이다. 사진은 한 서만자 신자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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