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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 특집 - 바오로 6세 교황·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8-10-19 10:07:55 | 조회 : 134

가톨릭평화신문 2018.10.21발행 [1486호]

 


시성 특집 - 바오로 6세 교황·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양떼 안에서 부활해 신앙의 길잡이 된 시대의 목자들 



14일 성인으로 선포된 바오로 6세 교황과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포함해 ‘한 묶음’으로 보면 이번 시성식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하 공의회)를 마무리하고, 교회 쇄신을 추진하면서 세상과 본격적으로 대화하기 시작한 목자다. 관계가 끊겼던 동방정교회와 이슬람에 먼저 찾아가 지도자들을 만난 데 이어 교황들 가운데 최초로 1964년 인도를 방문했다. 당시로선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땅을 밟은 최초의 교황이다. 또 사회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을 통해 빈곤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예언자적 통찰을 제시했다.

1980년 중남미 엘살바도르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 순교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하느님 백성의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은 ‘양 냄새 나는 목자’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하느님의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었다. 그는 순박한 민중 속에서 “이런 양 떼와 함께라면 착한 목자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두 성인이 걸은 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줄곧 얘기해온 교회가 걸어야 할 길과 같다. 교황은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는 교회”(「복음의 기쁨」 49항)가 낫다고 말한다. 또 가난한 이들 편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라고 재촉한다. 이는 두 성인이 이미 삶의 증거로 보여준 교회적 삶이다.

성인은 하늘의 별에 비유된다. 별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길을 알려준다. 교황이 복자품을 받은 지 3, 4년밖에 안 된 두 복자를 성인으로 선포한 이유는 그들을 통해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제시하기 위해서다. ‘살아 있는 성녀’라고 칭송받던 마더 데레사조차 복자에서 성인이 되는 데 13년이 걸렸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 바오로 6세 교황이 1972년 로마에 있는 한 성당을 방문하는 길에 군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으로 나가 새로운 교회의 길을 냈다.




두려움 없이 새로운 길 개척한 성 바오로 6세


바오로 6세는 이탈리아 밀라노대교구장직을 수행하다 1963년 제262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에 선종한 성 요한 23세 뒤를 이어 공의회를 속개해 개방과 쇄신, 개혁을 견인했다.

공의회는 16세기 이후 교회 사상과 문화를 지배해온 트리엔트 공의회 정신을 ‘쇄신’하는 험난한 도전이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교회 문을 꽁꽁 걸어 닫은 면이 없지 않다. 그는 선임자의 뜻을 이어 교회 문을 열고 바깥 공기가 들어오게 했다. 또 교회만이 구원의 방주로 머무는 것을 원치 않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눈을 감고,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예수님께 다가간다면

그분은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므로 눈을 떠야 합니다.”(1967년 2월 19일 강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탕자’로만 여기던 갈라진 형제들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1964년 그리스 정교회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만나 포옹하고,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 이어 1054년 내려진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기념비적인 공동 선언을 이끌어냈다. 개신교 연합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 본부도 방문했다. 교회일치운동과 종교 간 대화의 초석을 놓은 목자가 바오로 6세다.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는 교회 내부의 저항과 공격에 괴로운 나머지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회칙 「민족들의 발전」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 참상을 직접 보고 발표한 문헌이다. 그는 “현재 상황은 분명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만큼 정의를 벗어났다”며 국가 간 빈부 격차를 해소를 촉구했다. 그러자 미국 금융가에서는 “마르크시즘의 재탕”이라고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평등한 국제 질서와 자본가들의 탐욕, 을(乙)들의 고통에 대한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신설한 조직이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다. 교황은 지난해 「민족들의 발전」 반포 50주년 기념식에서 온전한 인간 발전이라는 개념은 바오로 6세가 회칙에서 말한 ‘온전한 발전’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바오로 6세는 또 교회 보편성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제3세계 추기경을 많이 임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같은 행보를 보인다. 지난 5월 임명한 추기경 14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소위 변두리 출신이다. 인공피임과 낙태에 반대하는 가톨릭 생명윤리도 그의 회칙 「인간 생명」(1968)에 기초한다. 우리가 모국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그가 견인한 전례 개혁 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6세가 걸은 길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 노동자들이 2015년 5월 시복식을 앞두고 산 살바도르 광장 빌딩 외벽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초대형 걸개그림을 설치하고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자신의 말대로 엘살바도르 국민들 마음 안에서 부활했다. 【CNS 자료 사진】




민중 안에서 부활한 성 오스카 로메로

1980년 3월 24일 미사 도중 피살된 로메로 대주교는 이미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마음 안에서 성인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의 반독재 투쟁은 정치적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일부의 의견 때문에 시복시성 절차가 지연됐을 뿐이다.

로메로가 처음부터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가 1977년 산 살바도르대교구장에 임명되자 군부와 보수층에서는 무난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농민운동을 하는 친구 루틸리오 그란데(예수회) 신부가 군부에 참혹하게 살해되자 정권의 폭력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 장례 미사에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으로 벗의 죽음을 기렸다. 그리고 친구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장례 미사 다음 주일, 교구 내 모든 성당의 미사를 취소하고 주교좌 대성당에서만 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이 군사 정권의 폭력과 인권 탄압에 대한 고발에 귀 기울이게 하려고 내린 결정이었다. 또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안으로 들어가 복음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 무렵 일기장에 “권력자와 부유한 사람들, 그리고 빈곤한 사람과 사회적 취약자 중에 신부는 어느 편에 서야 하나. 나는 의문이 없다.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적었다.

당시 정권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가난한 이들 편에 선 사제와 수도자들도 마구잡이로 체포, 고문했다. 정부는 신변 안전 보장을 운운하며 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다. 하지만 “양 떼가 안전하지 못한데, 목자가 무슨 안전을 바라겠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정부가 강론을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국을 폐쇄하려고 하자 “하느님이 가지신 최고의 마이크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가 가지신 최고의 마이크는 교회이다. 여러분이 교회다”라며 국민들에게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라고 호소했다.

그러는 사이에 살해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을 예상했다. 암살당하기 며칠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활하지 않는 영원한 죽음을 믿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면, 엘살바도르 국민들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로메로의 순교는 이 시대 교회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가난과 폭력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리스도가 걸은 비폭력 평화의 길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두려움과 무관심을 어떻게 떨쳐내고 그 길에 오를 것인가 묻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같은 질문을 하면서 두 성인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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