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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특집] 한국 전쟁 순교자 119위 시복 본격 나서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9-06-21 17:18:30 | 조회 : 633

가톨릭평화신문  2019.06.23 발행 [1520호]



[6ㆍ25 특집] 한국 전쟁 순교자 119위 시복 본격 나서


홍용호 주교와 80위 현장 조사 마무리,

신상원과 37위는 시성성에 계류 중...

북한 지역 순교자 입증 여부가 관건  



6ㆍ25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66년. 분단은 민족에 ‘지독한’ 상처를 남겼지만, 교회도 그에 못지 않은 상처를 안게 됐다.

그래서 교회는 분단 공간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시복’에 나섰다.

한국 교회가 시복을 추진 중인 6ㆍ25 순교자는 모두 119위다.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와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다.

먼저 2007년 5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시복 추진 교령을 반포하면서 막을 올린 38위 시복 건은 현재 교황청 시성성에서 1년 9개월째 계류 중이다. 2017년 12월, 총 17회기에 걸친 국내 시복 예비심사 절차를 마무리하고 관련 시복 조서 사본들을 다 교황청 시성성으로 보냈지만, 그 후속 진행 절차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최근 시성성에서 이 시복 건과 관련한 역사위원회 보고서와 행정 서류 미비 사항을 보완해줄 것을 요청해온 데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보완할지를 로마 청원인인 빌리브로드 비리버 신부에게 확인하는 단계다. 아직까지는 교황청 시성성 통상회의에서 안건의 최종 결정을 위해 보고관이 작성하는 포지시오(Positio)도 작성하지 않은 단계다.

2009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한국 교회의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가 결정되면서 시작된 81위 시복 건은 현재 현장 조사가 거의 마무리된 단계다. 2017년 1월 81위 시복 안건 착수와 함께 시복법정 구성 교령이 반포되면서 본격화된 데 이어 지난 2월 말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광주ㆍ전주ㆍ인천ㆍ춘천ㆍ원주ㆍ수원ㆍ제주교구에서 조사가 시행됐고, 오는 7월 둘째 주 대전교구 조사가 끝나면 현장 조사는 모두 마무리된다.

다만 두 시복 건은 순교자들의 치명터나 무덤이 미수복 지역인 북한에 있는 경우는 현장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 체제 북한에서 희생된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생존자들의 증언으로만 남아 있어 순교 사실 입증 여부가 시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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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특집]

어릴적 덕원 수사들과의 추억,

여든 넘어도 가슴속에 살아 있어



▲ “성체 신비를 말씀으로 알아듣고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던

프룀머 신부의 말을 전하는 장초득 수녀.




25일은 6ㆍ25 전쟁이 발발한 지 69돌. 그 상잔의 아픔은 민족도, 교회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이날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보낸다.

원산 출신의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장초득(피아, 87) 수녀도 그 참혹했던 수난을 함께했다. 1ㆍ4후퇴 때 월남한 뒤 입회,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의 초대 한국인 원장 수녀로 선출돼 두 차례나 원장을 지낸 장 수녀를 만나 유년 시절과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2012년 여름.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에 잡지 한 권이 배달됐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발행하는 계간 「분도」였다. 잡지를 들춰보던 장 수녀는 1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시선을 멈췄다. ‘너무도 기뻐’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원산 해성유치원 시절의 덕원수도원 수사 신부들이 그 사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왼쪽부터 우달리코 자일러(네 번째), 가브리엘 프룀머(다섯 번째), 요셉 쳉글라인(일곱 번째), 이쇼 샤이빌(열한 번째) 신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들. 독일 슈바이클베르크수도원에서 온 가브리엘 프룀머 신부,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우달리코 자일러 신부,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 요셉 쳉글라인 신부, 스위스 우츠낙수도원 이소 샤이빌 신부 등 4명이었다. 사진에 실린 11명의 수도자 중 자신이 아는 네 수도자를 보며 장 수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애써 되살렸다.

젖먹이 때 황해도 봉산에서 원산으로 이주한 장 수녀는 ‘수줍음 많던’ 해성유치원 시절부터 회상했다. “프룀머 신부님은 유치원생이던 저를 자전거에 태워 덕원수도원에 데려가시곤 했어요. 기차도 태워주셨지요. 그때 풍경이 그림처럼 스쳐 가네요. 성모상을 지날 때면 화살기도도 가르쳐 주셨어요. ‘성모님 사랑해요’ ‘성모님, 예수님께도 아가타(장 수녀의 세례명)가 왔다 간다고 전해주세요’ 같은 기도였지요. 신부님은 덕원수도원이 폐쇄될 때 체포돼 자강도 옥사덕수용소에 잡혀가 무진 고생을 하셨는데, 훗날 제가 수녀가 돼 신부님이 계시던 슈바이클베르크수도원에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 같은 분이셨지요.”

자일러 신부는 장 수녀가 해성학교 출신들도 한 해에 한두 명밖에 못 가던 원산의 명문 루시(Lucy) 중ㆍ고교에 입학하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원산성당에서 미사를 드려주기도 했다. 자신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가타가 수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썼던 자일러 신부는 신자들에게 병자 영성체를 주러 갔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돼 1948년 12월에 선종했다.

쳉글라인 신부는 가난하고 자녀들이 많은 가정을 물질적으로 많이 보살펴준 따뜻한 사제였다. 당시는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던 때라 장 수녀는 쳉글라인 신부 앞에서 일본어로 교리문답 시간에 12단 기도문을 외고 구두시험도 봤다고 한다. 끝으로 해성학교 시절에 만나 월남 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재회했던 샤이빌 신부는 훗날 스위스 이츠낙수도원에 가서 성묘를 통해 만나야 했다.

원산의 기억은 이뿐만이 아니다. 왜관수도원의 이석진 신부는 원산본당 시절 장 수녀의 해성유치원 동기였다. 어머니(윤옥봉 막달레나)의 친구였던 쿠네군다씨가 바로 이 신부의 어머니였고, 두 어머니는 주일 미사를 마치면 원산수녀원 교리실로 가서 독일에서 온 발부르가 수녀와 임 마리아 수녀에게 성경 이야기를 즐겨 듣던 사이였다. 그 속에서 장 수녀는 성소를 키웠고 해성유치원 교사이던 김 데레사 수녀처럼 ‘수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런 신앙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장 수녀는 1950년 12월 6일 대형 병원선을 타고 월남, 부산에서 그리던 가족을 만나 서울로 가게 된다. 집안을 돕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메리놀 수녀원 기숙사에 있으면서 수녀들을 돕던 장 수녀는 1955년 수녀회에 입회, 평생 수도의 길을 걸었다.

“원산에 살 때 덕원의 신부님들은 저희에게 성체거동을 보게 해주셨는데,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대한 흠숭과 사랑, 성체에 대한 굳센 신심을 심어주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면 그 시절 성체거동은 잊히지 않고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전쟁 중에 옥사덕수용소로 끌려가 4년 6개월간 고초를 겪다 독일에 귀환, 수도원 피정의 집 책임자로 일하던 프룀머 신부의 말을 장 수녀는 요즘도 잊지 못한다. “아가타, 성체 신비를 말씀으로 알아듣고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말을 기억하며 장 수녀는 요즘도 성체 앞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꿈을 꾼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 ***


6ㆍ25 순교자 시복,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가해자 잊지 말자’보다는 순교자들의 삶과 성덕 기억하고 현양


▲ 6·25 순교자 시복 추진은 ‘가해자를 잊지 말자’는 이념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성덕을 기억하고 우리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사진은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장초득 수녀.



6ㆍ25전쟁 발발 직후, 서울대목구 도림동본당 보좌 이현종 신부는 일시 몸을 피한다. 그러나 ‘양들 때문에’ 다시 본당에 돌아온 그는 7월 3일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한다. 사제품을 받은 지 79일 만이었다. 이처럼 당시 전쟁 전후, 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렸고 그 핏자국은 오늘까지도 선연하다.

한국 교회는 2000년 대희년에 앞서 이를 기억하며 순교자 160명을 기록한 「현대 그리스도인 순교자 명부」를 작성해 교황청에 보냈고, 2007년에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38위, 2009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 결정을 통해 한국 교회 차원에서 81위에 대한 시복 추진에 들어간다.

전쟁은 끝났고, 세월도 66년이나 흘렀다. 그럼에도 분단과 대치, 질곡과도 같은 ‘이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이념의 눈으로 ‘시복’을 바라보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주장이 교회 안에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를 잊지 말자’보다는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면서 신앙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그렇다면 전후 60여 년 만에 추진되는 시복의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 역사위원회 위원장 조한건 신부는 “이념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지만, 가해자의 잔학한 행위나 보복이라는 시각으로 시복을 바라보기보다는 희생자의 신앙적 측면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북녘 형제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것이 앞서야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산주의와도 대화에 나선 보편 교회의 모범을 한국 교회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고도 있다.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다시는 그러한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분단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예수님의 뜻이 뭔지, 또 민족사 안에서 그 뜻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지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역사 안에서 민족 화해와 일치, 용서와 평화를 우리가 제대로 구현해 왔는지, 이념적 양극화를 메우려는 노력을 해왔는지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다.

순교자들의 영웅적 삶과 성덕에 주목하면서 시복을 북녘 교회의 재건, 나아가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이정표로 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평양교구 담당 장긍선 신부는 “피란을 떠날 수 있었는데도 순교 사제들은 ‘착한 목자는 양 떼와 함께한다’며 본당을 지켰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로 바쳤다”면서 “이들의 희생을 북녘 교회 재건의 밑거름이자 오늘의 한국 교회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해자를 잊지 말자’보다는 순교자들의 삶과 성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복시성주교특위 대전교구 담당 김성태 신부도 “6ㆍ25 순교자들이든, 18∼19세기 박해시대 순교자들이든 너무나 분명한 건 순교자들은 ‘신앙 때문에’ 피를 흘렸다는 것”이라며 “그분들의 순교는 이념 문제라기보다는 구원을 향한 의지이고,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반대하는 데 대한 증거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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