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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이의송·김이쁜·이붕익 가족과 김한여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9-09-09 10:18:19 | 조회 : 143

가톨릭평화신문 2019.08.25. [1528호]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이의송·김이쁜·이붕익 가족과 김한여 베드로



김이쁜(마리아, 1812~1866), 이의송(프란치스코, 1821~ 1866), 이붕익(베드로, 1843~1866)

김이쁜, 이의송, 이붕익은 한가족이다. 이의송은 황해도 신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디 성품이 온화하고 착했으며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으나 상처하고 황해도 서흥에 사는 김이쁜과 재혼했다.
그는 고향에서 의원으로 생활하다 배천으로 이주해 살다가 1857년께 가족과 함께 서울 차동(현 서울 중구 순화동 의주로)으로 이주해 살았다. 이곳에 산 지 2년 뒤인 1859년께 이의송은 서소문 밖에 사는 정의배(마르코) 회장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1862년에 온 가족이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의송의 가족은 교회 서적과 묵주, 십자고상 등을 구입해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또 자신의 집에 공소를 차려 신자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의송은 자신의 의술로 병든 사람들을 많이 고쳐 주었고, 김이쁜과 이붕익은 비신자들을 권면하며 입교시키는 데 노력했다. 특히 이의송은 이덕보(마태오)와 함께 황해도 지역을 순회하며 12개 이상의 고을에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의송 가족은 황해도 신천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상경해 비신자인 이의송의 형 집에 거처했다. 그러다가 이의송 가족은 시흥 봉천(현 서울 봉천동)에 사는 아들 이붕익의 처남 이형택의 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포교들이 이의송의 형을 닦달해 이의송 가족의 피신처를 알아냈고, 결국 이들은 시흥 봉천에서 체포돼 우포도청으로 압송됐다.

이의송은 포도청에서 문초와 형벌 중에도 굳게 신앙을 증언하면서 아내 김이쁜과 아들 이붕익에게 “정신을 수습해 실수하지 마라”며 여러 차례 권면했다. 이에 힘입어 김이쁜은 “어찌 지금에 와서 천주를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진술하면서 신앙을 증언했다. 아들 이붕익도 여러 차례 배교를 거부하면서 모든 형벌을 참아냈다.

결국, 이의송 가족은 사형선고를 받고 1866년 10월 23일 서울 양화진 형장에서 군문효수형으로 모두 순교했다. 당시 이의송은 45세, 김이쁜은 54세, 이붕익은 23세였다.



▨김한여(베드로, 1808~1866)
김한여는 서울 출신으로 낙산 근처 양사동(현 서울 종로 6가)에서 살았다. 17세 때 부친에게 교리를 배웠고, 서대문 밖에 살던 조씨에게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의 직업은 능라장 편수로 곧 비단을 짜는 장인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 그는 일을 위해 궁궐을 드나들며 생활했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됐으나 배교하고 석방됐다. 이후 궁궐의 나인을 첩으로 맞이해 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랫동안 신앙과 멀어졌다. 첩이 죽은 뒤 ‘천주를 배반하면 반드시 뒤에 재앙이 있을 것 같다’며 회개한 그는 베르뇌 주교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받은 후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됐다. 그는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고, 자신의 집을 공소로 만들어 교우들이 베르뇌 주교에게 성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1866년 9월에 체포된 김한여는 좌포도청에 압송돼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매질 아래 죽는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배교하지 않겠다”며 신앙을 증거했다.

그는 1866년 10월 25일 서울 양화진 형장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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