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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이기주 · 이용래 · 박성운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9-09-09 10:25:22 | 조회 : 13

가톨릭평화신문 2019.09.08. [1530호]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이기주 바오로·이용래 아우구스티노·박성운 바오로



▨이기주(바오로, 1839~1866)
이기주는 경기도 시흥 출신으로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2세 무렵인 1851년께 서울의 정의배(마르코) 회장에게 교리를 배운 뒤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입교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23세 무렵에 조학영의 딸과 혼인했다.
그는 1866년 10월(음력)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체포돼 우포도청에 압송됐다. 그는 형벌과 문초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15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서 감히 배교할 수 없다”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기주는 1866년 11월 16일 양화진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용래(아우구스티노, 1822~1866)
이용래는 충청도 충주에서 태어나 황석두(루카) 성인의 조카인 황마리아와 혼인했다. 이후 그는 처삼촌인 황석두의 집에 자주 왕래하면서 교리를 배웠다. 황석두는 그에게 “천주교는 매우 좋은 종교이며, 십계는 올바른 도리라고 할 만하다. 죽은 뒤에 반드시 좋은 데로 간다”고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이용래는 1859년 다블뤼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다음 아내와 함께 홍산 부덕리(현 충남 부여군 옥산면 대덕리)로 이주해 훈장을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1866년 10월 18일 처남 황기원(안드레아)과 함께 서울의 포교에게 체포돼 홍산 관아에 투옥된 후 4일 뒤 서울 좌포도청으로 압송됐다. 그는 포도청에서 처음 문초와 형벌 때 마음이 약해져 “우매한 탓에 천주교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나라의 금령이 있었으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이덕경(레오)을 자신으로 오인했기에 잡혀 온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용래는 그러나 곧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처음의 진술을 뒤집었다. 그는 “저는 앞서 진술에서 살아 보려는 계책으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진술했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건대 그것은 천주 신앙을 굳게 증언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천주교를 믿어 온 것은 진실로 마땅히 죽을 이유가 됩니다. 이렇게 체포된 마당에 주둥이가 석 자라 한들 어찌 죽을죄를 면하겠습니까”라고 신앙을 증거했다.
이에 그는 사형 판결을 받고 1866년 11월 20일 양화진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박성운(바오로, 1843~1866)

박성운은 서울 남문 밖 전생서(현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박성운의 조부 박바오로는 1868년 서울에서 순교했고,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베르뇌 주교 등 순교자의 시신을 매장했던 순교자 박순지(요한 사도)가 그의 백부이다. 이 밖에도 그의 집안에서는 여러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박성운은 16세 때 한요한의 딸을 아내로 맞아 짐꾼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그는 1866년 병인박해 초기에 베르뇌 주교가 순교하자 동료들과 함께 주교의 시신을 찾아내 와서(현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안장했다.

1866년 10월에 체포된 그는 “이미 천주를 섬겨 왔으니 이 마당에 이르러 빨리 죽기를 바랄 뿐”이라며 순교를 희망했다. 그는 사형 판결을 받고 1866년 11월 20일 이용래 등과 함께 양화진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3세였다.

박성운은 형장으로 가는 길에 “어려서부터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천주 교리를 실천해 왔는데 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기 때문에 천주님을 위해 죽으러 간다”고 큰 소리로 신앙을 증거했다. 그리고 그는 결박이 잠시 풀린 사이에 십자성호를 긋고 칼을 받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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