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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특집] 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9-09-20 09:49:19 | 조회 : 188

가톨릭신문  2019-09-22 [제3162호]



 [순교자 성월 특집]

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서


주님 뵈옵는 길, 그 믿음을 새깁니다


서울 종로성당 김대건 성인상


많은 이들이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피의 순교’로 기억한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순교는 가장 영광스러운 신앙의 증거다. 하지만 성인의 삶과 신앙을 모두 느끼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성인의 삶은 그 자체로도 복음을 향하고,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었다. 신앙, 그 하나를 위해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움직였던 성인의 발길은 한반도 곳곳에, 그리고 저 멀리 바다 건너에도 남아있다. 하느님을 향해 걸었던 성인의 발자취마다 세워진 성지를 따라 함께 순례해보면 어떨까.



솔뫼성지


■ 솔뫼성지(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성인이 태어난 곳 솔뫼. 성 김제준(이냐시오)과 고 우르술라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인은 신심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솔뫼는 성인의 증조부인 복자 김진후(비오)의 세례 이후 교우촌으로 변모한 마을이다. 집안의 깊은 신심은 집안에서 난 많은 순교자에서 알 수 있다. 성인의 증조부 복자 김진후를 비롯해, 성인의 작은할아버지인 복자 김종한(안드레아), 성인의 아버지 성 김제준도 모두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다.


■ 골배마실성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810)

신앙을 위한 성인의 머나먼 여정은 겨우 7살 남짓한 나이에 시작됐다. 성인의 일가족은 1827년 정해박해를 피해 솔뫼를 떠난다. 그리고 16세가 된 성인은 골배마실 인근의 은이공소에서 성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골배마실은 현재 양지파인리조트 부지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성인의 가족들이 거쳐 간 한덕골(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619-1)은 현재 사적지로 조성돼 있다.

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 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성인은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6개월에 걸쳐 걷고 또 걸어 중국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를 거점으로 신학생으로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마카오에 발생한 민란 등으로 성인은 필리핀 롤롬보이의 도미니코수도원으로 피신해 공부를 이어가야 했다. 성인은 롤롬보이에 3차례에 걸쳐 방문, 모두 합해 1년 이상을 이곳에 머물렀다. 마카오에서 공부하던 신학교,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는 현재 터만이 남아있고, 카모에스공원에 성인상이 세워져있다.


■ 제물진두순교성지(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40)

신학생이었던 성인에게는 공부 외에도 사명이 있었다. 바로 귀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성인은 타이완을 비롯해 상하이, 난징, 우쑹, 훈춘 등 중국 각지를 다니며 부단히 귀국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았고, 샤오바자쯔(小八家子)에서 부제품을 받은 뒤 입국에 성공했다. 성인은 한양에서 신자들을 만나며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보고, 돌우물골(현 소공동 인근)에 집을 마련한 뒤 제물포를 통해 다시 중국 상하이를 향했다. 제물진두순교성지는 성인이 성지 인근의 포구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떠났음을 기념하고 있다.


■ 용수성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1길 108)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페레올 주교, 성 다블뤼 주교 등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을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풍랑으로 표류하던 성인은 제주도 앞의 작은 섬에 기적적으로 표착했고, 배를 수리하고 양식을 얻어 육지를 향했다. 이를 기념하는 용수성지에는 성인의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이 있다.

나바위성지

■ 나바위성지(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마침내 1845년 10월 12일 성인은 충남 강경 황산포 인근에 정박해 다시금 조선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첫 방인사제가 조선에 입국한 날이다. 성인은 신자 구순오의 집에 머무르다 본격적인 사목을 위해 서울로 떠났다. 이 사건을 나바위성지가 기념하고 있다. 또한 대전교구 강경본당도 구순오의 집터를 매입하고, ‘성 김대건 신부 사목 순례지’를 조성했다.


은이성지 전시물

■ 은이성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

조선에 도착한 성인은 은이공소를 거점으로 한양과 경기 곳곳을 다니며 사목활동을 펼쳤다. 은이성지는 성인이 유년시절 신앙생활을 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자, 사목을 하며 마지막으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또한 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상하이 진자샹성당도 이곳에 복원했다. 이밖에도 이천 단내성가정성지(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155번길 38–13), 광주 도척성당(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노곡로 63) 등이 성인의 사목활동을 기념하고 있다.


■ 새남터성지(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80-8)

1846년 6월 5일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확보하기 위해 백령도 등을 살피다 체포된 성인은 해주 감영으로 끌려갔다가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된다. 성인은 3개월의 수감생활 동안 40여 차례의 문초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증거하며 스승 신부들과 동료 최양업에게, 그리고 성인이 가장 사랑했던 조선교회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조선 땅에 온지 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다.


미리내성지

■ 미리내성지(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

첫 방인사제였던 성인은 25세의 나이로 순교했지만, 성인의 뜻은 신자들 안에서 끊임없이 뜨겁게 타올랐다. 신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성인의 시신을 수습해 미리내에 안장했다. 이후 미리내의 신자들은 성인의 묘소를 지켰고, 1928년에는 무덤 곁에 성인의 경당이 세워졌다. 아직 국내에 성지개발이 이뤄지기도 전부터 수많은 신자들이 순례하며 성인의 뜻을 기억하던 이곳은 오늘날 미리내성지로 조성됐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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