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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강요한・김양범・박안드레아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9-12-13 17:16:28 | 조회 : 140

가톨릭평화신문 2019.12.01 발행 [1541호]



하느님의 종 ‘이벽 세례자 요한과 동료 132위’ 약전


강 요한 ・ 김양범 빈첸시오 ・박 안드레아




▨ 강요한(1800~1867)

강요한은 충청도 신창 어촌 출신으로 일찍이 신앙을 받아들인 아버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는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 열심히 복음을 선포해 다블뤼 주교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됐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선교사를 도와 교회에 봉사하던 그는 부인을 친척 집으로, 15살 아들을 남의 집 머슴으로 보낸 뒤 선교사들을 구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당시 리델 신부를 공주 지역에 은신처를 구해 피신시켰고 페롱 신부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또 1866년 7월 1일 장상인 페롱 신부의 명에 따라 리델 신부가 중국으로 피신하자 그는 조선에 남은 페롱과 칼래 신부를 보살폈다.

강요한은 이러한 행동으로 점차 박해자들에게 알려져 체포 대상자가 됐고 마침내 1867년 신창 지역을 돌던 서울 포교들에게 잡혀 서울로 압송됐다. 강요한은 체포되기 전 가족들에게 “나를 살려 준다고 해도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순교할 것이다. 너희도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교리를 실천하다가 만일 체포되거든 주님을 위해 순교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강요한은 1867년 8월 30일 양화진에서 조타대오 회장 등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 김양범(빈첸시오, 1804~1867)

김양범은 1815년 을해박해 때 강원도 원주에서 순교한 복자 김강이(시몬)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가 경상도 지역으로 이주해 있을 때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김강이가 순교할 당시 그는 11세에 불과했다.

김양범은 어린 시절에 박해를 겪은 탓에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품행이 바르고 부지런해 장성한 뒤에는 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러던 중 1859년 또다시 박해를 당해 집과 세간, 전답 등 모든 재산을 관가에 빼앗겼다.

김양범은 이후 충청도 홍주 거더리(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와 당진시 합덕읍 신리 사이의 마을)에 정착해 자신의 집을 공소로 꾸몄다. 그리고 사제들이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찾아오면 복사로 봉사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가족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그 와중에 아들 김선행(필립보)이 1867년 가을 수원 포졸들에게 체포돼 수원에서 순교했다. 김양범은 아들이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며느리를 만나러 가다가 밀고자가 이끌고 온 수원 포졸들에게 잡혔다. 그때가 1867년 9월이었다. 그는 체포될 당시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한 모습으로 순교의 뜻을 밝혔다.

김양범은 수원 관아로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혹독한 매질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 박안드레아(1818~1867)

박안드레아는 간양골(현 충남 예산군 예산읍 간양리) 회장으로 박루치아와 결혼해 1859년 아들 박의래(베드로)를 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매산(현 충남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공소 부회장으로 있다가 공산군에 체포돼 피살된 박영옥(안드레아)이 그의 증손자이다.

박안드레아 회장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홍주 포교들에게 간양골 공소에서 체포됐다. 홍주 진영으로 압송된 그는 여러 차례 영장 앞으로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했으며, 옥에 함께 갇혀 있던 신자들에게는 순교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권면했다. 특히 함께 체포된 유서방이 마음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힘써 권면해 순교 원의를 다지게 했다.

박안드레아는 1867년 10월 원미리 교우촌 양도미니코 회장, 유서방, 김동과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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