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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전야고보・이제현・정덕구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9-12-13 17:22:43 | 조회 : 756

가톨릭평화신문 2019.12.08 발행 [1542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전 야고보 ・ 이제현 마르티노・ 정덕구 야고보 



▨ 전야고보(?~1867)

전야고보는 청주 금봉(현 충북 청원군 미원면 월룡리) 출신으로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13살 때 보은 멍에목 교우촌 회장인 매부 최용운(암브로시오)로부터 교리를 배워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전야고보는 세례받은 직후부터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정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아버지와 형이 멍에목 신자들과 함께 청주 포졸들에게 체포돼 옥에 갇히자 밥을 빌어 옥중의 신자들을 도왔다. 관원들은 그럼에도 야고보가 시각장애인이어서 체포하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와 형도 얼마 뒤에 석방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867년 10월 청주 포졸들이 금봉으로 몰려와 전야고보와 그의 동생 마티아를 체포해 청주로 압송했다. 전야고보는 청주로 끌려가던 도중 동생에게 은밀하게 “나는 맹인이라 석방될지도 모르지만, 순교를 각오하고 있다. 너는 본디 마음이 약해서 형벌을 받으면 굴복할 수도 있으니 내 생각하지 말고 네 재주껏 도망가라”고 했다. 그러자 동생은 형의 말이 옳다고 여겨 몰래 수갑을 벗고 도망했다.

청주 관아 형관이 전야고보를 보고 “천주교가 무엇인지 맹인이 어찌 알겠느냐? 어서 빨리 놓아주도록 해라”고 명하자 그는 형관에게 “제가 비록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지만, 마음으로는 한결같이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고 있습니다”라며 큰소리로 주요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전야고보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 이제현(마르티노, 1811~1867)

이제현은 서울 서부 양동(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형과 함께 살았다. 그는 11살 때 형에게 교리를 배워 유진길(아우구스티노)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1834년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여항덕(파치피코) 신부에게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제현은 1859~1860년 무렵에 내포 지역을 사목하던 다블뤼 주교를 만나 자주 성사를 받으며 가까이 지냈다. 또 서울에 사는 정의배(마르코)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이제현은 1867년 선교사의 공문을 가지고 상경하던 중 홍주 포교에게 체포돼 우포도청으로 압송됐다. 그는 엄한 문초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교우들을 한 명도 밀고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그는 “배교하라”는 강요에 “45년간 믿어온 천주교를 어찌 버릴 수 있겠느냐”라며 항변했다. 그러면서 “지금 죽는다면 천당의 영광스러운 부귀가 눈앞에 있으니 빨리 죽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증언했다.

이제현은 1867년 11월 23일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 정덕구(야고보, 1845~1867)

‘덕오’라고도 불리는 정덕구는 경기도 용인 더우골(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 덕곡) 사람으로 점촌 삼배일(현 이동면 덕성리 삼배울)에 살았다.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11월 26일 경기 광주 포교 세 패가 삼배일로 쳐들어와 신자들을 체포할 때, 할머니와 삼촌 정여삼(바오로), 동생 마티아, 예비신자 이화실 등과 함께 체포됐다. 포교들은 이들은 모두 한 방에 몰아넣고는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은 뒤 “신자들을 밀고하라”며 매질을 했다. 신자들은 모두 정신을 잃을 만큼 심하게 맞았다.


매질을 멈춘 포교들은 정덕구의 동생 마티아의 쇠사슬을 풀어 주고는 술과 고기를 사오라고 시켰다. 포교들이 술에 취해 잠에 빠지자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 정여삼과 이화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도망쳤다. 정여삼과 이화실은 광주로 압송돼 순교했다.


정덕구는 가족을 데리고 용인 국수봉과 절골 등지로 피신해 살다 공주 국실 점촌(현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 비신자 마을에 정착해 숨어 생활했다. 그러다 1867년 12월 5일 이곳에 쳐들어온 죽산 포교들에게 잡혔다.

죽산 관아로 압송된 그는 옥에 갇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다 20여 일 만인 1867년 12월 25일경 옥중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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