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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7) 도리・볼리외・랑페르・위앵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2-06 12:18:34 | 조회 : 581
가톨릭평화신문 2016.05.15 발행 [1364호]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7>성 도리ㆍ볼리외ㆍ브르트니에르(랑페르)ㆍ
위앵 신부가 밟은 마지막 고국 땅 마르세유


성모님께 기도하며 조선으로 떠난 목자들



하늘길이 열리기 전,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주된 방법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구는 물물 교환의 장인 동시에 많은 이들의 만남과 작별의 공간이기도 했다.

프랑스 남부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프랑스 제1항구 마르세유 항구는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864년 7월 박해받는 나라 조선으로 떠나기 위해 배에 올랐던 성 브르트니에르(랑페르)ㆍ도리ㆍ볼리외ㆍ위앵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고국 땅 마르세유(Marseille)로 떠났다.













프랑스 남부 론 강 하구 근처에 자리한 프로방스 코트다쥐르 주의 주도 마르세유.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국내선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프랑스 제2 도시다.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항구도시는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와 도리ㆍ볼리외ㆍ위앵 신부가 1864년 7월 17~19일 3일 동안 머물며 선교지로 나아갈 용기와 지혜를 성모 마리아에게 청한 곳이기도 하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Notre-dame de la Garde) 성당



몸이 휘청했다. 세차게 부는 바닷바람 때문이 아니라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종탑 위에 세워진 황금 성모자상 때문이었다.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성당의 꼭대기를 보려다 중심을 잃은 것이다.

웅장한 크기, 흰색 벽돌, 층마다 연결되는 외부 계단까지. 성당은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성의 모습 같았다. 3층에 오르자 마르세유 항구 전경과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 출항하는 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당 내부 천장은 황금을 입힌 그림으로 가득했고, 바닥은 색색의 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벽면 곳곳엔 배가 그려져 있었다. 천장부터 배 모형을 길게 늘어뜨린 모빌도 눈에 띄었다. 뱃사람들의 성당다웠다.

선교사들은 관례대로 출항 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에 들렀다. 이들은 조선까지의 여행이 안전하길 기원하며 조선에서 선교에 열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했다. 그 당시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브르트니에르 신부가 도리 신부에게 건넨 한 마디로 충분히 가늠된다.

“참 좋다! 내가 가난하게 되길 20년 넘게 바라왔는데 이제 정말 가난하게 됐어.”



마르세유 항구


항구 앞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거리의 악사가 곡을 연주하고, 마임 배우는 행인들을 관객 삼아 박수 없는 공연을 이어갔다.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이 영락없는 휴양지였다.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이프성을 보기 위해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선착장에 모여 있었다. 순례단원들도 그 배에 함께 올랐다. 모터 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빠르게 육지와 멀어졌다. 덩달아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도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멀어질수록 더욱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성당 꼭대기에 놓인 황금 성모자상이었다. 형체는 작아졌지만, 함께 기도하겠다는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가 확신 있게 다가왔다.

1864년 7월 19일 오후 3시, 사이드(Said)호에 올랐던 선교사들도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고국 땅과 황금 성모자상을 한없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조선이란 동양의 작은 나라로 떠나며 마음에 피는 불안과 걱정들을 성모 마리아에게 위로받으며.


글ㆍ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성 브르트니에르 (랑페르)
Simon Marie Antoine Just Ranfer de Bretenieres, 1838~1866

1861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브르트니에르(랑페르)는 1864년 사제품을 받고 조선 선교사로 임명됐다. 1865년 5월 선교사들과 함께 조선에 입국한 성인은 정의배 회장 집에서 지내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등 선교 활동을 준비했다. 그러나 1866년 2월 이선이의 밀고로 숨은 곳이 탄로 나면서 그해 3월 7일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군문 효수 형을 받고 순교했다.





성 도리
Pierre Henri Dorie, 1839~1866

도리 성인은 1862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64년 사제품을 받고 조선으로 떠났다. 1865년 5월 조선에 도착한 도리 신부는 용인 손골에 부임해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866년 2월 이선이의 밀고로 거처가 알려지면서 포졸에게 체포된 성인은 그해 3월 7일 입국한 지 10개월 만에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군문 효수 형을 받고 순교했다.





성 볼리외
Bernard Louis Beaulieu, 1840∼1866

성 볼리외는 프랑스 보르도교구 신학교를 다니던 중 186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해 이듬해 사제품을 받은 후 조선 선교사로 임명돼 프랑스를 떠났다. 조선에 입국한 후 그는 충남 공주 지방 선교를 담당하게 됐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박해가 일어나 1866년 2월 체포되고 말았다. 성인은 같은 해 3월 7일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군문 효수 형으로 순교했다.



성 위앵
Martin Luc Huin, 1836~1866

1861년 프랑스 랑그르교구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은 성 위앵은 2년간 교구 사제로 사목하다 186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위앵 신부는 이듬해 조선 선교사로 임명됐고, 조선에 입국해 충청도 지방 선교를 맡았다. 하지만 1866년 3월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의 체포소식을 듣게 된 성인은 오매트르 신부와 함께 관헌에 자수해 3월 30일 선교사들과 함께 충청 갈매못 형장에서 군문 효수 형으로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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