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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년] 전주형무소 학살 현장, 비명 지르며 죽어간 사람들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2-12 12:31:15 | 조회 : 365

가톨릭평화신문 2020.02.16 발행 [1551호]



퇴로 막힌 공산군의 무자비한 공격… 비명 지르며 죽어간 사람들


[한국전쟁 70년, 갈등을 넘어 화해로]
(6) 전주형무소 학살 현장







▲ 옛 전주형무소 정문 전경. 
1950년 9월 공산군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전주형무소에 갇힌 전주교구 사제들



“9월 27일은 추석 다음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스럽게 밖이 시끌벅적하고 비명과 아우성이 그치지 않았다.” (「천주교 전주교구사 Ⅰ」 1002쪽)

1950년 9월 추석. 전주형무소는 피로 얼룩진 대학살의 현장이었다. 자신들을 해코지하려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잠정적인 적으로 생각했을까? 국군과 연합군의 반격으로 퇴각을 앞둔 공산군은 전주형무소 수감자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형무소 밖에서도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당시를 기록한 역사적 자료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70년 전 비극의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1950년 8월 4일 전북 김제 수류에 피신해 있던 전주지목구장 김현배 신부와 교구 신부들이 공산군에게 체포됐다. 김 지목구장과 전동 본당 주임 이약슬 신부, 보좌 김종택 신부, 김재덕ㆍ김영구 신부, 이대권 부제 등 6명이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들은 전주형무소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 공산주의를 비난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종택 신부는 순교할 각오를 하고 공산주의의 나쁜 점을 비난했다. 김재덕 신부는 공산주의를 과격하게 비난하다 골병들게 매를 맞았다. 죽음 앞에서도 공산주의에 굴하지 않고 맞섰다.

6ㆍ25 민간인희생조사연구회 이인철(93) 대표에 따르면 전주형무소에는 100개의 방이 있었고, 2000명 정도가 갇혀 있었다. 방 1개에 20명 정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 있는 데다 여름이라 날씨까지 더워서 손으로 머리를 훑으면 이가 한 줌씩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수감 공간은 비좁아 앉아있기도 힘들어서 잠까지 앉아서 자야 할 형편이었다.

형무소에 갇혀 있던 신부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수감자들에게 애덕을 베풀었다. 김현배 신부는 형무소에 갇혀 있는 동안 청소를 도맡아 했다. 식사 때가 되면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감자들에게 자신 몫의 밥을 나눠주었다. 김재덕 신부는 수감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잘 수 있도록 변기통에 앉아 잠을 잤다. 수감자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신부들에게 의지하며 형무소 생활을 버텼다.

공산군은 9월 20일경 수감자들을 불러내 형무소 뒤뜰에 폭 3m, 길이 5m 정도의 구덩이를 수십 개 파게 했다. 수감자들은 구덩이를 파면서 자신들에게 닥칠 비극적인 미래를 예상이나 했을까? 공산군은 28일 퇴각을 앞두고 24일 밤부터 수감자들을 한 명씩 불러내 구덩이 앞에 세운 뒤 곡괭이나 삽, 낫 등으로 때려죽였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에 관해 이인철 대표는 “전쟁 중에 총으로 쏴 죽인 전례는 많지만, 민간인을 때려죽인 사건은 드물다”며 “발굴 당시 시신 대부분은 머리가 부서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추석 다음 날인 27일이 되자 상황은 심각해졌다. 유난히 밖이 시끌벅적했다. 곳곳에서 비명과 아우성이 들렸다. 감방문을 여는 소리도 들리고 수감자들을 불러내는 소리도 들렸다. 형무소 내에는 공산군들에게 불려 나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어떤 수감자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좀 전에 나갔다”며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가족이 찾는다는 거짓말에 “사실 제가 그 사람입니다” 하고 나가서 죽음을 맞았다. 형무소에 갇혀 있던 신자 김경석, 한영기(베드로), 엄에우제비오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이처럼 공산군은 26일과 27일 이틀간 집중적으로 수감자들을 학살했다. 1,000여 명이 희생됐다. 이에 앞서 우리 군경도 7월 전주형무소에서 좌익이라는 이유로 수감자 1,400여 명을 학살했다. 이인철 대표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히고 수감자들을 다 데려가기에는 부담을 느낀 공산군이 수감자들을 죽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극적인 탈출

전주형무소 2층에 수감돼 있던 김현배 신부도 27일 방에서 불려 나왔다. 그런데 등 뒤에서 한 공산군이 속삭였다. “당신은 여기서 내려가거든 영치한 물건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말고 곧바로 형무소 정문을 빠져나가시오. 지금 형무소 정문이 열렸는데 만일 이때 빠져나가지 않고 머뭇거리다가는 죽소” 하고 말했다.

김 신부는 곧장 형무소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부들에게 라틴말로 빨리 형무소를 빠져나가라고 했다. 신부들이 형무소를 빠져나가고 그 뒤로 몇 명이 나왔는데 오토바이를 탄 공산군이 와서 어떤 말을 하자 형무소 문이 닫혔다.

김현배 신부 등 성직자들과 수감자 일부를 풀어준 것은 명령이 잘못 전달됐다는 증언이 있다. 9월 20일 전주형무소에 주둔한 공산군 102 경비연대에 내려온 지시는 수감자들을 풀어주라는 것이 아니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산군 중 일부가 수감자들을 살려주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증언도 있다.



신학생들의 순교

장로교신학교병원(현 전주예수병원) 근처 채석장과 완주군수 사택 안마당 방공호 등 전주형무소 밖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광주교구 소속 김정용ㆍ전기수ㆍ고광규 신학생은 20일 전주로 피난 와있었다. 김정용 신학생은 전동성당에 숨어 있다가 화를 면했지만, 전기수와 고광규 신학생은 체포돼 9월 25일 전라북도 정치보위부(예수병원 자리)로 끌려갔다.

공산군들은 26일 예수병원 뒷산에 있는 방공호 속에 수감자들을 처넣고 무참히 학살했다. 전주는 이틀 후 28일 유엔군에 의해 수복됐다. 김정용 신학생은 그날 전동본당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트럭을 몰고 형무소로 가서 400~500구의 시체를 뒤졌다. 하지만 두 신학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병원 뒷산 방공호로 가서 줄줄이 묶여 죽은 시체들을 뒤졌다. 그리고 맨 앞에서 전기수 신학생, 두 번째에서 고광규 신학생의 시신을 찾았다.




▲ 옛 전주형무소(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완산구 노송동 일대) 삼거리 전경. 
지금은 상가들이 들어섰다.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

6ㆍ25 민간인희생조사연구회 이인철 대표는 1950년 9월 29일 당시 22살의 나이로 참상을 목격했다. 진주(進駐) 경찰이었던 이 대표는 전주경찰서에 배치됐다. 그는 “전주형무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봤다”며 “직접 본 것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주형무소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 중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175명을 위한 추모 행사를 여는 등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 대표는 “그때 돌아가신 분들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뛰셨던 분들이었지만 지금까지 애국자 대우를 못 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부가 좀 더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그러면서 “두 번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영민·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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