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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박태진・박선진・김마태오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2-12 13:50:38 | 조회 : 344

가톨릭평화신문  2020.02.16 발행 [1551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박태진 마티아 ・ 박선진 마르코 ・ 김마태오







▨ 박태진(마티아, 1819~1868)ㆍ박선진(마르코, 1836~1868)


박태진과 그의 사촌 박선진은 홍주 원머리(현 충남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 출신으로 선대 때부터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해 염전을 일구고 살았다. 원머리 일대는 일찍부터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곳이다. 1866년과 1867년에 원머리 교우 몇몇이 체포돼 순교했다.

박태진과 박선진은 1868년 가을 함께 체포돼 수원으로 압송됐다. 박선진은 포졸들에게 끌려가기 전 부모에게 “이제 가면 죽을 것이니 어찌 혈육의 정에 박절함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명에 따라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 영혼을 구하는 데 좋은 일이니, 과히 염려 마시고 몸조심하십시오”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순교의 뜻을 드러냈다.

박태진과 박선진은 수원 관아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박태진은 혹독한 형벌에 견디지 못하고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박선진이 그에게 “이제는 배교해도 죽을 것이다. 그러니 큰 임금을 배반하고 죽어서 지옥의 영원한 벌을 받아 어찌하겠느냐”며 권면했다. 이에 박태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박해자들 앞에서 꿋꿋이 신앙을 증언했다.

박태진과 박선진은 옥에 갇힌 지 15일 만에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박태진이 49세, 박선진이 32세였다.

둘의 시신은 같은 마을에 살던 서덕행이 거두어 원머리에 나란히 안장했다. 두 순교자의 무덤은 1989년 4월 3일 발굴돼 유해는 대전교구 충남 당진 신평성당 구내에 이장됐다가 2009년 11월 3일 본디 있던 원머리 묘역으로 다시 이장됐다.



▨ 김마태오(1829~1868)

김마태오는 충청도 연풍 출신으로 일찍이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입교한 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김마태오는 부친 마르티노와 아들 마티아까지 3대가 모두 입교한 성가정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김마태오 가족은 다행히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868년 그의 가족에게도 박해가 몰아쳐 아들 김마티아가 가장 먼저 체포됐다. 피신해 있던 곳에서 이 소식을 들은 김마태오는 순교를 결심하고 충주 진영에 자수했다.

부친 마르티노는 아들 김마태오가 자수하러 간 뒤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고 그대로 집에 남아 있다가 며칠 뒤 진영에서 그를 잡으러 온 포졸들에게 태연하게 웃으면서 체포돼 압송됐다.

충주 진영에 자수한 김마태오는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채 먼저 체포된 아들 마티아와 함께 투옥됐다. 아들 마티아는 할아버지가 끌려오자 석방됐다. 이후 김마태오와 부친 마르티노는 함께 옥살이하면서 형벌을 받았다. 그들은 함께 옥에 갇혀 있던 교우 12명이 형벌을 두려워하며 배교하려 하자 큰 소리로 그들을 힘써 권면해 신앙을 회복하게 해 다 함께 순교로 이끌었다.

김마태오와 부친 마르티노는 함께 치도곤을 맞고 순교했다. 당시 김마태오는 39세, 부친은 63세였다.

한편,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는 김마태오가 「공충도사학죄인성책」에 수록된 1868년 5월 충주 진영 순교자 ‘김도현’과 동일 인물로 추정한다. 김마태오와 김마르티노가 순교한 해는 「치명일기」와 「병인치명사적」에 모두 ‘정묘년’(1867년) 또는 ‘무진년’(1868년)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 순교 행적에 “교우 12명이 함께 갇혔고, 함께 순교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점에서 볼 때 정묘년이 아니라 무진년으로 시복특위는 추정한다. 정묘년에는 이처럼 많은 신자가 같은 시기에 체포된 경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공충도사학죄인성책」에 나오는 김도현을 김마태오와 동일 인물로 추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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