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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이요한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3-05 09:32:24 | 조회 : 441

가톨릭평화신문  2020.03.08 발행 [1554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이요한








▨이요한(?~1871)


이요한 회장은 충청도 가재울(현 충남 당진시 순성면 본리)의 양반 출신으로 강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일찍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왔다. 그의 가족은 고향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목천의 성거산 서들골(현 충남 천안시 목천읍 송전리)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그는 혹시라도 오만한 마음이 생길까 염려해 양반 신분을 숨기고 중인으로 행세했다.

이후 그는 서들골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실천했고 회장 소임을 맡아 본분을 다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져 체포령이 내려졌다. 이에 이요한은 가족과 함께 전라도로 피신했고, 아내가 사망한 뒤에는 3남매를 데리고 다시 충청도로 돌아왔다. 당시 친한 사람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유했으나, 요한은 자식들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재혼하지 않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날 당시 이요한의 가족은 경기도 손골(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살고 있었는데 박해 소식을 듣고는 용인 남성골로 이주했다. 그러나 아들 베드로가 용인 포교에게 체포됐다가 석방됐고, 1867년 10월에는 이요한뿐 아니라 아들 베드로와 손자 프란치스코 등 3대가 모두 체포됐다가 다시 석방됐다.

이후 얼마 뒤 이요한은 아산 일북면 쇠재(현 충남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로 다시 이주해 살았다. 그러던 중 1871년 4월 13일 서울에서 내려온 좌포도청의 포교와 아산 포교가 함께 들이닥쳐 가족 3대를 체포했다. 이내 아산 관아로 압송된 이요한의 가족은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천주교 신자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산 관장이 “왜 3대가 함께 죽으려고 하느냐?”라고 묻자 이요한의 손자 프란치스코가 나서서 “아무리 3대라도 몫이 다 따로따로이니, 지극히 존귀하신 대군대부를 어찌 배반하겠소”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3대가 하나같이 “만 번을 죽는다더라도 우리의 대단히 은혜로우신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소”라고 하며 신앙을 고백했다.

이에 아산 관장은 이요한의 가족을 서울 좌포도청으로 압송했다. 이송 도중에 그들은 포교들과 함께 잠깐 집에 들러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때 이요한이 손자 프란치스코의 어린 아들인 증손자를 안고 눈물을 흘리자, 프란치스코는 “조부님, 어찌 큰일을 앞두고 미천한 혈육의 정을 생각하십니까?” 하면서 권면했다.

이요한의 가족은 좌포도청에서도 관리가 “3대를 함께 죽일 수는 없다”며 배교하라고 강요하자 “이처럼 좋은 때를 늘 기다려 왔다”며 거절했다. 이에 이요한과 아들 베드로, 손자 프란치스코는 함께 1871년 5월 8일 순교했다. 당시 이요한의 손자 프란치스코는 20세였다.

한편, 이베드로의 아들 요셉과 야고보, 프란치스코의 아들 바오로는 이들이 순교한 후 원주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평리)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여주 부엉골은 가파른 산과 협소한 계곡에 위치해 낮 3시만 돼도 태양이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험준한 골짜기에 자리한 교우촌이었다. 이곳에 박해기 배티와 배론 신학교를 계승한 예수성심신학교가 1885년 개교해 신학생을 양성하기도 했다. 현재 교우촌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경작지 터와 5~6군데 집터가 남아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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