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로그인 회원가입 후원하기 사이트맵
위원회 소개 124위 시복시성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순교자 2차 시복시성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시성 103위 성인 자료실 커뮤니티
후원하기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원프란치스코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3-12 11:09:28 | 조회 : 425

가톨릭평화신문  2020.03.15 발행 [1555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원프란치스코








▨원프란치스코(?~1871)


원프란치스코는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원바오로와 루치아 부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9살 이전에 모친을, 14살 이전에 부친을 여의고 고아로 성장했다. 1793년 홍주에서 순교한 복자 원시장(베드로)이 그의 할아버지이고, 1799년 청주에서 순교한 복자 원시보(야고보)가 그의 작은 할아버지이다.

원프란치스코 집안은 작은 할아버지인 원시보를 통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집안은 충청도 홍주 양반 출신들로 1788~1789년께 입교해 대를 이어 신앙을 지킨 구교우였다.

원프란치스코의 할아버지 원시장은 1791년 신해박해 순교자이다. 체포돼 홍주 관아에 끌려간 원시장은 주리가 틀리고 치도곤 70대를 맞는 혹독한 형을 받았다. 그래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자 관장은 그를 얼려 죽이라 명했고, 원시장은 한겨울 밤에 찬물을 뒤집어쓴 채 온몸이 꽁꽁 얼어 죽임을 당했다. 원시장은 죽어가면서 “저를 위해 온몸에 매를 맞으시고 제 구원을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해 제 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라며 찬미하고 순교했다.

원프란치스코의 작은 할아버지인 원시보는 첩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지 못하자 집으로 돌아가 즉시 첩을 내보냈다. 이후 1797년 정사박해때 체포돼 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혹독한 형을 당한 뒤 순교했다.

원프란치스코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착하고 신심이 깊어 모두가 그를 칭찬했다. 그는 어머니가 일찍 죽자 어린 나이였음에도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고, 소경이었던 아버지를 극진히 돌보았다. 또 장성한 뒤에는 교회 서적을 두루 읽고 익혀서 교리에 아주 밝아 교우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 했다. 그는 신심 깊은 한 교우 집에서 머슴살이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21세 때 혼인해 5남 2녀를 뒀다. 원프란치스코는 순교를 염원해 주변 교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순교할 것을 권면했다. 또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를 만나 성사를 받기도 했다.

원프란치스코는 1866년 3월 12일 포교들에게 체포돼 죽산 관아로 압송돼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는 문초를 받을 때마다 “천주는 내 큰 부모요 모든 이들의 큰 부모이실 뿐 아니라 모든 임금의 왕이요 주님이시니 결코 천주를 배반할 수 없다”고 신앙을 증거했다. 그러면서 그는 “너희가 나를 천만 번 죽일지라도 결코 천주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포교들은 “네놈은 가서 천주학이나 하라”며 그를 석방했다.

집으로 돌아온 원프란치스코는 재산을 모두 빼앗겨 가족과 함께 어렵게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1871년 봄 다시 포교들에게 체포돼 양성 소새 주막(현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신계리)으로 끌려가 갖가지 형벌을 받은 뒤 수원 관아로 압송됐다.

원프란치스코는 수원 관아에서도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굳게 신앙을 지켰다. 또 옥중에서 만난 밀고자를 사랑으로 대했고, 옥으로 찾아온 자식들에게 밀고자를 원수로 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식들이 옥에 넣어 준 음식을 동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이러한 원프란치스코의 말과 행동은 냉담하던 2명의 교우에게 감화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죄를 뉘우치고 용기를 갖도록 해 줬다.

원프란치스코는 영장 앞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문초와 형벌을 받고 다음 날인 1871년 5월 14일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정리=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1287 교회사 숨은 이야기 | 그들은 왜 얼굴에 분을 발랐을까  관리자 20-08-12 20
1286 교회사 숨은 이야기 |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8일 피정  관리자 20-08-06 52
1285 교회사 숨은 이야기 | 그늘 속의 사람, 정약현  관리자 20-07-23 150
1284 공산당의 박해 끝에 월남… 왜관에 정착한 베네딕도회 수도..  관리자 20-07-15 124
1283 서울 떠나 함경도에서 선교 꽃 피운 ‘성 베네딕도회’  관리자 20-07-15 119
1282 교회사 숨은 이야기 | 홍유한의 남인 인맥과 서학 공부  관리자 20-07-15 127
1281 수원교구 내 김대건 성인의 자취를 따라 (하)  관리자 20-07-08 128
1280 교회사 숨은 이야기 | 여사울 신앙 공동체의 출발점  관리자 20-07-08 167
1279 교회사 숨은 이야기 | 광암 이벽,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  관리자 20-07-01 162
1278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관리자 20-07-01 159
12345678910
화면조절기능
한국교회의 역사
시복시성 절차
순교자 관련 성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서울대교구순교자현양회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의 성지
맨위로
사이트맵 찾아오시는길 전화번호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즐겨찾기 추가 웹마스터 e-mail
관련사이트 바로가기
절두산
배론
솔뫼
다락골
치명자산
천진암
어농
오륜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우)143-912 서울특별시 광진구 면목로 74(중곡1동 643-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층 전화:02-460-7669 팩스:02-460-7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