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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유문보・유치성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3-18 14:11:38 | 조회 : 562

가톨릭평화신문  2020.03.22 발행 [1556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유문보 바오로・유치성 안드레아








▨ 유문보(바오로, 1813?~1872)


유문보는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옥구ㆍ장성 등지로 이주해 살다가 장성 내인동(현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에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이후 그는 박해를 피해 전라도 영광과 충청도 남포 등지로 다시 이주해 살다 장성 삭별리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1871년 신미박해가 한창이던 음력 11월 한 동료의 밀고로 체포돼 나주로 압송됐다. 그리고 그곳 진영 옥에서 유치성(안드레아) 회장과 강영원(바오로)를 비롯한 교우들을 만났다.

영장은 유문보에게 압수한 그의 교회 서적을 내밀며 “저 책이 너의 책이냐?”고 묻자, 그는 “예, 저의 책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영장이 그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면서 “동료들을 밀고하라”고 다그쳤다. 유문보는 “국법대로 사형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소리치며 교우들을 밀고하지 않았다. 화가 난 영장은 포교들에게 매질을 명했고, 유문보의 팔이 부러진 다음에야 그쳤다.

어느 날 유문보와 유치성, 강영원은 다시 영장 앞으로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이때 영장이 “진실로 천주 신앙을 믿느냐?”고 묻자, 그들은 함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영장이 “이후에도 천주 신앙을 믿겠느냐”고 묻자, 그들은 다시 “만 번 죽더라도 천주 신앙을 믿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영장은 “너희를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 형벌을 가했다. 이때 유문보는 발등을 불로 지지는 형벌을 받아 살이 타고 진물이 흐를 정도가 됐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처럼 형벌을 당한 뒤 유문보와 두 동료는 다시 옥에 갇혔다. 그들은 혹독한 옥중 생활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를 바쳤다. 또 오랜 옥살이로 현세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자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마귀의 유혹이니 이 유혹을 물리치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자”며 서로 권면했다.

그러던 중 유문보는 혹독한 고초로 병에 걸렸다. 그는 1872년 3월 20일 교우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를 부르다가 옥에서 순교했다. 당시 나이는 거의 60세가 되었다.



▨ 유치성(안드레아, 1825~1872)

유치성은 경상도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다. 그가 두 살 되던 해인 1827년 정해박해로 부모가 체포돼 충청도로 유배되면서 그도 충청도에서 성장하게 됐다. 장성한 뒤 그는 충청도를 떠나 전라도 무장의 암티점(현 전북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는 무장에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며 회장 소임을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871년 일어난 신미박해로 다음 해 1월 2일 나주 포교에게 체포됐다.

포교들은 그에게 “배교하고 천주교인들이 있는 곳을 밀고하라”고 형벌을 가했으나, 유치성은 “절대로 배교할 수 없고, 교우들이 있는 곳을 말할 수도 없다”고 답했다.

나주 진영 옥에 갇힌 유치성은 여러 차례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 그러던 중 함께 옥살이하던 교우 유문보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먼저 병으로 옥사했다. 그리고 얼마 뒤 유치성은 동료 강영원(바오로)과 함께 나주의 군사 훈련장이며 형장이던 무학당으로 끌려갔다. 영장은 다시 유치성에게 형벌을 가하고 배교를 강요했다. 유치성은 태장 30여 대를 맞아 정신이 혼미해졌음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자 영장은 유치성에게 백지사형을 내렸다. 유치성은 1872년 4월 16일 순교했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유치성의 후손 중에는 사제가 8명, 수도자가 8명 탄생했다.

한편, 「병인치명사적」의 순교자 목격 증인에 따르면 유치성이 백지사형이 아니라 매를 맞아 순교했다고 하며, 「치명일기」에는 돌로 맞아 순교했다는 기록도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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