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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강영원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3-25 16:36:09 | 조회 : 448

가톨릭평화신문  2020.03.29 발행 [1557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강영원 바오로







▨ 강영원(바오로, 1822~1872)

강영원은 충청도 홍산 출신으로 부모에게 신앙을 물려받았다. 부모가 순교하자 그는 교회 서적을 가지고 전라도 용담(현 전북 진안군 용담면)으로 이주했고, 다시 정읍 남면 이문동으로 이주해 임군명(니콜라오)의 집에서 품을 팔며 살았다.

그는 젊어서 아내를 잃은 뒤 재혼하지 않기로 하고 20여 년을 홀로 살았다. 천한 일을 마다치 않았으며 주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교우들과 함께 기도할 때면 언제나 겸손과 극기의 자세로 남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교우들을 만날 때마다 “제 소망은 박해를 당하게 됐을 때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입니다. 지존하고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받으셨으니, 나처럼 비천한 사람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1871년 신미박해가 계속되던 1872년 1월 3일 강영원은 여느 때와 같이 교우들과 함께 임군명의 집에 모여 기도를 하던 중 포교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급히 「성교예규」 등 교회 서적들을 챙겨 피신할 준비를 하다가 임군명과 함께 체포됐다. 포교들이 임군명을 체포하려고 습격한 것이었는데, 강영원도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함께 체포한 것이다.

강영원은 나주로 압송될 때 짚신도 없이 맨발로 눈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를 본 한 포졸이 버선을 벗어 그에게 주자, 한 포악한 포교가 버선을 칼로 찢으려 하다고 강영원의 발바닥을 베고 말았다. 이윽고 나주 진영 옥에 갇힌 강영원은 그곳에서 유치성(안드레아) 회장과 유문보(바오로)를 비롯한 다른 교우들을 만났다. 이후 그들은 모두 여러 차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강영원은 다시 영장 앞으로 끌려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이때 영장이 “천주교를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이며, 책은 어디에서 났으며, 동료 교우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고 추궁했다. 이에 강영원은 “천주교는 부모에게서 배웠는데 모두 사망했으며, 책은 집안에서 내려오던 것이고, 가르친 사람이나 아는 동료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강영원은 십계명을 외우면서 “사람으로서 어찌 이러한 도리를 받들어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그는 옷이 벗겨진 채로 매질을 당했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예수 마리아”를 소리 내어 외쳤다.

옥에서도 강영원과 교우들은 함께 기도를 바쳤다. 또 오랜 옥중 생활로 삶에 애착이 생기자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마귀의 유혹 때문이니 이 유혹을 물리치고 끝까지 함께 신앙을 증거하자”고 서로 독려했다. 그러던 중 유문보가 병이 들자 강영원은 밤낮으로 그를 돌보며 임종을 지켰다.

얼마 뒤 강영원과 유치성 회장은 나주의 군사 훈련장이며 형장이던 무학당으로 끌려갔다. 이곳에서 영장은 둘에게 다시 형벌을 가하고 배교를 강요했다. 강영원과 유치성 회장은 태장 30여 대를 맞고 정신이 혼미해졌음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영장은 그들에게 백지사형을 내렸다. 이 가혹한 형벌로 강영원은 1872년 4월 16일 순교했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한편, 1781년 체포돼 강영원과 함께 옥살이하다 석방된 최성화와 서윤경은 강영원의 이름과 세례명을 ‘영운’ ‘성원’ ‘요셉’으로 증언해 「병인치명사적」에는 이 이름들이 함께 기록돼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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