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로그인 회원가입 후원하기 사이트맵
위원회 소개 124위 시복시성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순교자 2차 시복시성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시성 103위 성인 자료실 커뮤니티
후원하기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이병교 (끝)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4-23 09:04:07 | 조회 : 267
가톨릭평화신문 2020.04.26 발행 [1561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이병교 레오








▨ 이병교(레오, 1813~1879) 


이병교는 서울 차동(일명 수렛골, 현 서울시 중구 순화동ㆍ의주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교리를 배워 1836년 초에 입국한 모방 신부에게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또 1845년 입국한 다블뤼 신부에게 성사를 받고 그의 복사로 활동했다. 그는 최지혁(요한) 등 여러 교우와 교류하면서 전교와 신앙생활에 열심했다.

1856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입국하자, 이병교는 홍봉주(토마스) 집에서 주교를 만나 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 리델 신부의 복사로 활동했다.

이병교는 조선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보살폈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박해를 피해 여러 해 동안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는 가산을 모두 잃고 어렵게 지냈지만, 신앙생활은 조금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이병교는 1868년부터 최지혁 등과 선교사 영입 운동에 앞장섰다. 그 결과 1876년 5월 8일 블랑 신부와 드게트 신부가, 1877년 9월 24일 리델 주교가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다. 리델 주교와 상봉한 이병교는 당시 피신해 있던 충주 서촌 방축리(현 충북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서 진잠(현 대전시 유성구 원내동)으로 이주했다.

1877년 음력 8월 최지혁이 진잠에 살던 이병교에게 연락해 드게트 신부가 거처할 집을 구해 달라고 하자 그는 용인 공수동(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에 집을 마련해 교우들과 함께 드게트 신부를 모셨다. 이때부터 얼마 뒤 드게트 신부는 이병교의 아들 이경빈(요한)을 복사로 삼아 교우촌들을 방문하며 사목을 했다.

1878년 초 리델 주교와 신자들이 체포되자 이병교는 이곳저곳으로 피신해 다니다가 공주 서림촌에 은신했다. 그리고 얼마 뒤 드게트 신부를 서림촌으로 모시고 와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1879년 5월 16일 밀고자를 앞세운 서울 포교와 공주 포교가 서림촌을 덮쳐 신자들을 체포한 뒤 드게트 신부와 이병교, 김덕빈(바오로), 이용헌(이시도로) 등을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했다.

이병교는 체포된 직후 집안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보게 했고, 서울로 압송될 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강론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때 함께 가던 아들 이경빈이 만류하자, 그는 “내가 다른 때에는 생명이 아까워서 못했지만, 지금은 무서울 것이 없다. 주님의 명으로 이렇게 체포되어 서울로 가니 즐겁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아들에게는 도망갈 것을 권유했다.

이병교는 2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굶주림의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주식이라고는 작은 밥사발에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밥을 담아 아침저녁으로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들어올 때는 튼튼하고 건장한 신자들도 20일이 지나면 뼈와 살이 달라붙은 꼴이 된다. 그래서 옥에서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다. 옥졸들은 밤낮없이 옥에 갇힌 신자들을 괴롭히고 두들겨 패기를 즐겼다. 또 아무리 아픈 환자가 생겨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병교는 긴 옥살이에 병이 걸리고 말았다. 감옥은 위생이 나빠 피부병과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만연했다. 이병교는 보는 이들이 측은할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누워 십자성호를 그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그러다 1879년 8월 8일 옥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1266 5/29 124위 순교복자기념일: 신앙 선조들은 어떤 삶을 살았..  관리자 20-05-27 6
1265 하느님의 종 권철신의 남행 계획과 그들이 꿈꾼 공동체  관리자 20-05-20 128
1264 하느님의 종 권철신과 이기양이 지은 홍유한 제문의 행간  관리자 20-05-19 23
1263 칠극(七克) 이야기  관리자 20-05-19 21
1262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이병교 (끝)  관리자 20-04-23 267
1261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이아기  관리자 20-04-16 218
1260 성 김대건 탄생 200주년 희년 전대사 허용  관리자 20-04-10 145
1259 [한국전쟁 70년] 흥남 철수와 하느님의 종  관리자 20-04-09 152
1258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최지혁  관리자 20-04-08 163
1257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피가타리나  관리자 20-04-01 264
12345678910
화면조절기능
한국교회의 역사
시복시성 절차
순교자 관련 성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서울대교구순교자현양회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의 성지
맨위로
사이트맵 찾아오시는길 전화번호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즐겨찾기 추가 웹마스터 e-mail
관련사이트 바로가기
절두산
배론
솔뫼
다락골
치명자산
천진암
어농
오륜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우)143-912 서울특별시 광진구 면목로 74(중곡1동 643-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층 전화:02-460-7669 팩스:02-460-7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