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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3위 순교 성인 이야기 - 2. 기해박해 순교자 (중)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9-10 11:58:45 | 조회 : 47
가톨릭평화신문 2020.09.13 발행 [1580호]



참혹한 고문 속에 허벅지 살 뜯기면서도 하느님 증거하다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이야기 - 2. 기해박해 순교자 (중)






▲ 성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는 사위 곽씨를 앞세운 김순성의 밀고로 체포됐다.



103위 성인 중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는 70위에 이른다. 특히 가족이 많다. 가족들은 한날한시에 순교할 것을 약속하며 죽음의 길을 기쁘게 걸었다. 때로는 혹독한 형벌에 마음이 흔들린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순교로 주님 품에 안겼다. 피로 맺어지고 신앙으로 주님 안에 하나 된 가족 순교자들의 숭고한 믿음을 소개한다.


1. 기해박해 순교자 (상)
2. 기해박해 순교자 (중)
3. 기해박해 순교자 (하)
4. 병오ㆍ병인박해 순교자





김효임ㆍ효주 자매는 서울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여읜 뒤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해 중국인 여항덕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자매는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하고 아름다운 덕행과 극기로써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자매는 1839년 5월 3일 함께 체포됐다. 둘은 포청에서 학춤 외에도 달군 쇠붙이로 열세 군데나 지져대는 혹형을 받았다. 또 옷이 벗겨진 채 남자 죄수 방에 넣어졌다. 그때 갑자기 두 자매의 몸에 신비스러운 힘이 생겨 남자 죄수들이 두 자매를 범할 수 없었다.
 
김효주는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언니 김효임은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자매의 나이 24과 26살이었다.






유진길은 1824년 동지사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은 후 북경 교회와 연락을 담당했다. 그는 8차례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 조신철과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을 펼쳤다. 성직자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교황에게 보내 중국인 여항덕 신부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파견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839년 7월 17일 체포된 그는 포청에서 외국인 성직자들의 은신처를 대라며 가혹한 형벌을 받았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9월 22일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49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유진길이 순교할 당시 그의 아들 유대철은 13세에 불과했다. 그는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가 체포돼 순교하는 것을 보고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했다. 그는 포청에서 13살 어린 나이로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는 형리의 으름장에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하고 답했다. 화가 난 형리가 시뻘겋게 단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니 크게 입을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14차례 신문 중 100여 대의 매와 40여 대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도 언제나 평화롭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형리들은 유대철을 배교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10월 31일 목을 졸라 죽였다. 유대철은 103위 순교 성인 중 가장 어린 순교자다.





남이관은 18세 때 16세 조증이와 혼인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집안은 풍비박산됐다. 아버지와 함께 체포된 남이관은 경상도 단성으로 유배됐다. 그의 장인도 순교했다. 남편과 떨어져 홀로된 조증이는 친정에서 살며 정하상을 도와 선교사 영입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헌신했다. 1832년 남이관은 30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자 부부는 중국인 여항덕 신부를 도와 공소를 세우고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조증이는 남편 남이관을 이천으로 피신시킨 뒤 체포됐다. 그는 남이관을 잡으려는 형리로부터 가혹한 형별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이관도 곧 체포됐다.
 
남이관은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1839년 9월 26일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 순교했다. 부인 조증이 역시 그해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남편처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남이관ㆍ조증이 부부가 결혼 40여 년 동안 함께 한 삶은 10여 년에 불과했지만, 그마저도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시간이었다.

 


김제준은 1814년 순교한 할아버지 김진후와 큰아버지의 권면으로 입교한 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충청도 솔뫼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해 살았다.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용인으로 돌아와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해 15세 된 아들 김대건을 모방 신부에게 맡겨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로 유학 보냈고,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됐다. 포청에서 아들을 외국에 보낸 국사범으로 그해 9월 26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당고모 김 데레사는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종한의 딸로 17세에 손연욱 요셉과 혼인했으나, 남편이 해미에서 순교하자 홀로 살면서 가난하지만,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성직자들이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해 정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여항덕 신부와 이어 앵베르 주교의 살림을 돌보았다. 그는 1839년 7월 11일 앵베르 주교의 집에서 정하상 일가와 함께 체포됐다.
 
김 데레사는 주교의 은신처를 알아내려는 형리들에게 수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받았지만, 꿋꿋이 참아내고 옥에서 만난 이광헌의 딸 이 아가타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을 지켰다. 1840년 1월 9일 포청에서 44세의 나이로 이 아가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한 이 가타리나는 14세 때 조씨 성을 가진 외교인과 혼인해 3남매를 뒀다.
 
딸 조 막달레나는 어머니 이 가타리나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으나 외교인 친척들의 반대로 7살 때부터 외가에서 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18세가 되어 혼담이 오가자 동정을 지키기로 하고 서울로 가서 5, 6년을 지낸 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남편을 잃고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외교인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죽어 가는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며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8년 고향에서 박해가 일어나자 이 가타리나 가족은 집과 재산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 조 바르바라 집에서 같이 살았다. 이듬해 기해박해로 이 가타리나 모녀가 체포됐다.

모녀는 포청에서 함께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이 가타리나는 1839년 9월 57세 나이로 옥에서 순교했고, 딸 조 막달레나 역시 같은 달 옥에서 순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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