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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3위 순교 성인 이야기 - 3. 기해박해 순교자 (하)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09-17 10:51:24 | 조회 : 91
가톨릭평화신문 2020.09.20 발행 [1581호]



포졸들에게 묵주 내보이며 자수하고 함께 순교한 가족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이야기 - 3. 기해박해 순교자 (하)




▲ 이매임 성녀는 포졸들에게 묵주를 증거로 보이며 자수하고 있다.
출처=「한국 103위 성인들의 순교화집」

▲ 홍병주 성인은 3대가 순교한 신심이 돈독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해박해 때 성 앵베르 주교를 숨겨주었으나 김순성의 밀고로 성 앵베르 주교와 함께 체포되었다.
출처=「한국 103위 성인들의 순교화집」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박해의 매서운 칼날 앞에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 성인들의 순교사를 듣다 보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누가 어떻게 전한 걸까?”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 78명의 이야기를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술해 놓은 「기해일기」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기해일기」는 현석문(가롤로)이 편찬했지만, 그 작업은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에 의해 시작됐다. 앵베르 주교는 박해로 자신도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순교자들의 행적을 자세히 조사해 계속 작성하도록 당부했다. 「기해일기」 의 기록은 103위 순교자 시복시성 과정에 중요한 자료가 됐다. 「기해일기」를 남긴 앵베르 주교는 기해박해 때, 현석문은 병오박해 때 순교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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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해박해 순교자 (상)
2. 기해박해 순교자 (중)
3. 기해박해 순교자 (하)
4. 병오ㆍ병인박해 순교자




유소사는 명도회장 정약종의 부인이며 성 정하상 바오로의 어머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남편과 전실 아들 정철상을 잃고 재산을 몰수당한 유소사는 두 자녀를 데리고 마재 시댁에서 지냈다. 딸 정정혜는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렸다. 정정혜는 친척들의 구박과 냉대를 덕행과 인내로 극복했고, 그를 박해했던 몇몇 친척까지 입교시켰다.

유소사 가족은 박해가 일어나자 피신 권유도 거절하고 7월 11일 함께 체포됐다. 유소사는 79세의 고령임에도 포청에서 곤장 230대를 맞는 혹형을 견뎠다. 딸 정정혜도 곤장 320대를 맞고 13차례의 모진 신문도 이겨냈다. 유소사는 노인을 사형시키는 것이 국법으로 금지돼 여러 달 옥에 갇혀 있다가 11월 23일 옥사에서 순교했다. 103위 성인 가운데 최고령 순교자다. 딸 정정혜는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한 사람이 심은 신앙이 가족 모두를 순교의 길로 이끌었다. 허계임은 경기 용인 출신으로 결혼 후 중년이 돼서야 시누이 이매임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됐고, 딸 이정희ㆍ영희와 함께 입교했다. 이정희는 입교 후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했지만, 아버지는 딸을 외교인과 결혼시키려 했다. 이정희는 병을 핑계로 3년을 버틴 후 교우 청년과 혼인했지만, 2년 만에 사별하고 서울에 있는 고모 이매임 집에서 살았다. 이영희도 언니 못지 않게 신앙이 깊었다. 어려서부터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고 혼기에 이르자 혼담을 피하려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미고 언니가 있는 고모 이매임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허계임은 1839년 4월 초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내고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누이 이매임과 딸 정희ㆍ영희,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김성임, 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했다.

허계임은 그해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수했다. 이영희와 이매임은 7월 20일, 이정희는 9월 3일, 두 딸과 시누이가 모두 순교한 소식을 전해 들은 허계임은 9월 26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정희ㆍ영희 자매는 순교 전 부모를 여읜 조카 이 바르바라를 돌보고 있었다. 이 바르바라가 허계임 가족과 함께 자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바르바라도 4월에 체포됐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배교하지 않는다”고 더욱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옥에 갇혀 있는 다른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 5월 27일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했다. 그의 나이 15세였다.




최창흡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한국 교회 최초의 총회장 최창현의 동생이다. 어려서 입교했으나 형이 순교하자 겁을 먹고 잠시 신앙생활을 중단했다. 30세경 손소벽과 결혼 후인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부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최창흡의 딸 최영이는 20세에 조신철과 결혼했다. 조신철은 출가해 한때 스님이 됐으나 마부로 활동하다 유진길, 정하상 등을 알게 돼 입교했다. 그는 동지사의 마부로 일하며 북경 교회와 연락을 취하며 모방ㆍ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의 입국을 도왔고, 최영이는 그런 남편을 내조했다.

1839년 박해를 피해 조신철은 처가로 몸을 숨겼지만, 조신철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이 최창흡 집에서 발견돼 체포됐다. 모진 고문 끝에 최창흡과 조신철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손소벽과 최영이는 당고개에서 순교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자매는 어려서 외할머니의 가르침으로 어머니와 함께 입교했다. 언니 이영덕은 천주교를 몹시 싫어하던 아버지가 비신자와의 결혼 강요하자,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 아버지께 동정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래도 아버지가 고집을 꺾지 않자 이영덕은 어머니와 동생 인덕과 함께 가출해 교우 집에 숨어 살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앵베르 주교는 집에 돌아갈 것을 명령했지만, 조선 풍습에 가출했던 부녀자가 집으로 돌아가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세 모녀가 살 수 있도록 집 한 채를 마련해줬다.

자매는 1839년 6월 포졸에게 체포됐다. 이영덕은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28세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동생 인덕은 언니가 순교한 이듬해인 1월 31일 당고개에서 22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홍병주ㆍ영주 형제는 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801년 조부 홍낙민이 순교하자 부친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 했다. 형제는 훗날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됐고, 1839년 기해박해 때 선교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사실이 탄로 나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매우 혹독한 형별을 당하다 형은 1월 31일, 동생은 다음 날인 2월 1일 당고개에서 순교했다.

모녀는 포청에서 함께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이 가타리나는 1839년 9월 57세 나이로 옥에서 순교했고, 딸 조 막달레나 역시 같은 달 옥에서 순교했다.




비신자였던 한영이는 혼기에 이르자 권 진사라는 양반의 후처로 들어갔다. 남편이 임종할 때 대세를 받았는데 남편의 유언에 따라 딸 권진이와 함께 입교했다. 사별 후 집을 나와 교우들 집을 떠돌아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다. 권진이는 13세에 혼인했으나 남편이 너무 가난해 남편의 친척인 정하상의 집에서 살았다. 그는 여항덕 신부가 1833년 조선에 입국한 뒤부터 시중을 들었는데, 여 신부가 귀국하자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모녀는 1839년 7월 17일 체포돼 어머니 한영이는 서소문 형장에서, 권진이는 당고개에서 순교했다.





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은 어려서 부친을 여읜 후 매우 궁핍하게 살았지만, 신앙이 깊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고광성의 딸 고순이와 혼인했고, 부부는 신자들 사이에서 모범 가정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박종원은 앵베르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돼 교회 일에 헌신하다 박해를 맞는다. 피신해 있던 박종원은 위험을 무릅쓰고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격려하다 10월 26일 체포됐고, 부인도 다음날 체포돼 같은 옥에 갇혔다. 부부는 포청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모진 고문을 견뎠다. 박종원은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부인 고순이는 그보다 한 달 앞선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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