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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딸 유섬이’ 삶과 신앙 알리는데 앞장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8-18 12:28:52 | 조회 : 2404

가톨릭신문 2017-08-20 [제3058호]



 ‘순교자의 딸 유섬이’ 삶과 신앙 알리는데 앞장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


“물질만능주의 시대, 신자들에게 삶의 중심 알려줄 것”






작년 시극 이어 올해엔 뮤지컬 제작
 가난해도 신망 받던 고결한 삶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위로될 것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유섬이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성인이 아니지만 그분의 삶은 너무 맑고 귀하다”고 말한다.
마산교구는 지난해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유섬이의 삶을 집중 조명하며 순교자의 딸 유섬이시극을 발표하고 특강을 펼치는 등 유섬이의 삶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교구의 관심은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가 유섬이에 관한 자료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2014년 당시 총대리로 재직 중이던 배 주교는 하성래(아우구스티노·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 박사가 쓴 유섬이에 관한 자료를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배 주교는 “세계 어느 대문호도 이런 삶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유섬이의 삶은 물질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2014년 5위의 순교복자가 마산교구에서 탄생했다. 그런데도 배 주교는 세례명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배 주교는 유섬이의 삶이 우리에게 뜻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섬이는 성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은 너무 맑고 귀합니다. 그분의 삶을 통해 중심을 잃어버리고 물질을 좇아 사는 이 세대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배 주교는 유섬이의 삶은 가진 것이 없어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섬이는 9살의 나이에 부모 형제를 잃고 홀로 거제도로 유배 와 관비의 신분으로 살아갔지만 마음의 중심을 지키며 고결하게 삶으로써 당대 지식인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큰 신망을 받았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배 주교는 “비록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다른 이들을 이롭게 이끌 힘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유섬이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점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먼저 기억할 때 그리스도교의 가난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0~11월 열리는 세미 뮤지컬 ‘순교자의 딸 유섬이’를 준비하며 배 주교는 “처절한 삶을 살다간 유섬이를 드러내는데 우리의 공연이 너무 화려해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전하며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이것이라 생각하며 더 나은 공연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배 주교가 바라보는 유섬이의 삶은 맑고 검소하며 겉치레가 없는 진솔함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유섬이 묘도 비움의 삶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주차장 등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준비할 계획이다.

“유섬이의 삶은 절대 화려하지 않습니다. 너무 맑고 소박하죠. 그러나 그분의 정신은 곧고 고귀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재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리를 품고 살아가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유섬이의 삶을 통해 우리 안에 중심이 바로 잡히길 바랍니다.”



**** ***** ****


유섬이 묘의 묘비. ‘유처자묘’라고 새겨져 있다.


유섬이는…

신유박해로 가족 잃고
9살에 홀로 거제도 유배
평생 동정 지키며 살아



유섬이는 복자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과 순교자 신희(申喜)의 딸로 1793년 초남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유섬이가 3살 무렵인 1795년 한국천주교회 최초 선교사인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유항검의 집을 방문했고 일주일간 머무르며 인근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한다. 배기현 주교는 “유섬이의 세례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때 주 신부에게 세례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 일가는 순교하거나 유배를 가게 된다. 가족을 잃고 먼 땅으로 홀로 유배와 관비가 된 9살의 유섬이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하성래(아우구스티노·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 박사가 거제도호부사를 지낸 하겸락의 문집 「사헌유집」(思軒遺集) 중 ‘부거제’(附巨濟)에 유섬이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내는 「교회와 역사」 2014년 4월호에 상세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관비로 유배된 유섬이는 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던 여인에게 보내졌고 그 여인은 유섬이를 수양딸로 삼았다. 유섬이는 관아에 돈을 바치기 위해 양모에게 바느질을 배워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13~14세가 된 유섬이는 동정을 지킬 것을 선언한다. 마산교구 평신도협의회 시복시성분과 최종록(대건 안드레아ㆍ창원 사파동본당) 위원장은 “당시 시대상을 생각할 때 여성이 독신 선언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며 “동정부부인 오빠 유중철(요한)과 올케 이순이(루갈다)를 따라 자신도 믿음의 뜻을 세웠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섬이의 동정 결심은 16~17세가 되어 더욱 굳건해진다. 유섬이는 양모에게 흙과 돌로 집을 지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것은 독방과 같은 구조였다. 음식을 넣을 구멍과 작은 창만 내어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양모에게 대소변을 집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는 청을 한다. 유섬이는 25년 여 동안 스스로 갇혀 동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40세가 넘어 흙돌집에서 나온 유섬이는 한 자 길이의 칼을 몸에 지니고 동정을 지켰다. 고을 사람들도 그 정절을 알고 ‘유 처자’라 부르며 감히 더럽힐 마음을 갖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동정을 지킨 유섬이는 1863년 71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신동헌 기자 david983@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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