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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순교자들] (21) 최삼준 프란치스코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8-31 10:30:00 | 조회 : 3304

가톨릭평화신문 2017. 08. 27 발행 [1429호]




[평양의 순교자들] (21) 최삼준(프란치스코)



평양교구는 ‘평신도 교회’ 색깔이 뚜렷했다. 전교회장 강습회도 1933년 9월 평양지목구에서 처음으로 개최됐고, 평신도대회도 1934년 8월 평양지목구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평양지목구 가톨릭운동연맹, ‘조선 소년군’ 혹은 ‘가톨릭 소년군’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가톨릭 스카우트운동, 「가톨릭 연구」나 「가톨릭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문서 보급도 평신도들이 주도했다. 최삼준(프란치스코)은 특히 가톨릭 소년군을 조직, 청소년들의 신심 단련에 힘썼고 가톨릭 문화 선교에도 이바지했다. 강유선(요셉) 또한 전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가톨릭 문화 계몽, 가톨릭 소년군 활동 등에 기여했다.





가톨릭 소년군 조직, 심신단련에 힘써

최삼준은 1907년 경북 대구시 남산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최경집(빈첸시오), 어머니는 이봉조(마리아)였고, 4남 1녀 중 셋째 아들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며,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도쿄 죠치대 예과(철학 전공) 2년을 수료한 뒤 귀국했다. 뒤이어 장면(요한 세례자) 박사가 평양지목구 재단 사무를 총괄할 당시 평양 성모학교 교사로 취직해 평양에 살게 됐다.
 

성모학교 교사 시절의 최삼준은 1932년 평양 관후리 주교좌본당 산하 신심단체로 가톨릭 소년군, 지금의 가톨릭 스카우트를 조직, 청소년들의 심신을 단련하고 단체생활을 익히도록 했다. 또한, 성극단과 합주단을 만들고 훈련해 평양 시내는 물론 지방 본당과 공소를 순회하며 공연을 함으로써 가톨릭 문화 소개는 물론 전교에도 크게 공헌했다. 성모학교 재직 당시 그는 변 안나와 혼인해 슬하에 정규와 달웅 등 두 아들을 뒀다. 7∼8년간 봉직하던 성모학교 교사직을 그만둔 뒤 한때 직조공장을 경영했으나 실패하자 관서 내륙인 평북 강계로 이주, 교회 일에만 전념했다.
 

강계로 이주한 최삼준은 본당 신부를 도와 전교활동에 큰 몫을 한다. 교구에선 본명인 삼준이라는 이름보다 세례명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자백’(慈伯)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유순한 성품에 신앙심이 깊고 포용력도 커 가톨릭 신자로서,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모범을 보였다. 총회장이었고 나이가 많은 데도 성가대원으로 들어가 대원들을 잘 연습시켰다. 홍용호 주교가 견진성사를 줄 때 성가대와 함께 라틴어 성가를 혼성 4부 합창으로 불러 찬사를 받기도 했다. 생업도 있었지만, 이틀에 하루는 꼭 성당에 나가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해방과 함께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종교 활동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공산당의 박해로 월남하는 신자들이 점차 늘어 성당이 비게 됐다. 1947년 3월 강계본당에 유치원이 개설되던 즈음 강계본당 부회장 장 요한이 월남하면서 페인트 상점을 물려주자 최삼준 총회장은 이를 맡아 운영하게 됐다. 1949년 7월 8일 평양 기림리(현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 주교관에서 요양 중이던 석원섭 신부가 자신의 본당을 지키고자 강계본당에 귀환했지만, 돌아오자마자 병석에 누웠다. 최삼준은 석 신부를 병문안하고 돌아가던 중 보위부원들에게 연행돼 행방불명되고 만다. 이후 최 회장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 남편의 피랍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한 그의 부인은 한 달 뒤 남편의 소식을 알고자 평양으로 가기 위해 강계역에 나왔다가 대합실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그의 두 아들 또한 소식이 끊겼다.  




최삼준 회장은

■ 1907년 경북 대구시 남산동 태생

■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 일본 도쿄 죠치대 예과 2년 수료

■ 성모보통학교 교사

■ 강계본당 총회장

■ 1949년 7월 8일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연행돼 행방불명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자료=평양교구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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