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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순교자들] (22) 강유선 요셉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8-31 10:44:09 | 조회 : 3119

가톨릭평화신문 2017. 08. 27 발행 [1429호]



 
[평양의 순교자들] (22) 강유선(요셉)



평양교구는 ‘평신도 교회’ 색깔이 뚜렷했다. 전교회장 강습회도 1933년 9월 평양지목구에서 처음으로 개최됐고, 평신도대회도 1934년 8월 평양지목구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평양지목구 가톨릭운동연맹, ‘조선 소년군’ 혹은 ‘가톨릭 소년군’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가톨릭 스카우트운동, 「가톨릭 연구」나 「가톨릭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문서 보급도 평신도들이 주도했다. 최삼준(프란치스코)은 특히 가톨릭 소년군을 조직, 청소년들의 신심 단련에 힘썼고 가톨릭 문화 선교에도 이바지했다. 강유선(요셉) 또한 전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가톨릭 문화 계몽, 가톨릭 소년군 활동 등에 기여했다.



전교회장 활동하며 계몽운동 참여
 

강유선은 1901년 평안남도 강서군 성태면 태일리(현 평남 대동군 마산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알려지지 않았고, 2남 4녀 중 막내였다.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서당에서 한학을 조금 배웠다. 총명한 데다 의지도 강해 교리 공부에 힘썼고 일찍부터 전교사로 이름을 날렸다. 키가 작고 몸집도 작았지만, 성격이 활달했고 발표력도 뛰어났다.
 

어려서 마산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입교한 그는 누나가 마산본당 식복사로 일하면서 자신도 성당에서 여러 가지 잡무를 처리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두터운 신덕과 해박한 교리 지식, 매사에 충실한 성품을 인정받아 유급 전교사로 뽑혀 순안과 서포, 순천, 숙천, 영유 등지를 순회하며 전교회장의 직무를 수행했다.
 

가톨릭 운동에도 앞장서 가톨릭 문화 계몽운동에 참여했고, 1932년 평양 관후리본당에서 최삼준 회장과 함께 가톨릭 소년군 창단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징병을 피하고자 2년간 순천농회 서기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교회에 몸 바쳐 일했다.
 

광복 이후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난 북한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되찾고 교회활동에 활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징발당했던 관후리성당 부지를 되찾고 다시금 성전을 건축하게 되면서 강유선은 성당건립위원회 상임이사로 선임돼 부감목(지금의 총대리) 김필현 신부와 함께 자전거로 원근 각지를 가리지 않고 교구 내 본당과 공소 등을 두루 다니며 건축기금 모금에 헌신했다.
 

주교좌 성당 신축을 오로지 교구 신자들에게만 의존해야 했던 당시 상황으로 미뤄 건축비 마련과 인력 동원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추진력이 강한 김 신부의 노력과 강유선 회장의 설득력 있는 말솜씨는 평양대목구 전 공동체가 단결해 신축 공사를 진행하는 데 밑거름이 됐고, 1948년 말에는 대성당 외관이 거의 다 완성되고 종각까지 세워졌다. 성당을 고사포 진지로 빼앗겼던 평양대목구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948년 12월 28일 평양시 인민위원회로부터 건축 중인 주교좌 성당을 1949년 1월 3일까지 양도하라는 날벼락 같은 공문을 받게 된다. 이후 성당 양도 문제로 김 신부와 강 회장은 수없이 시 인민위원회로 불려다녔다. 1949년 6월 10일에도 출석요구서(소환장)가 날아왔고, 강 회장은 김 신부, 최항준(평양대목구 경리 담당) 신부와 함께 시 인민위원회로 출두했으나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다.




 


강유선 회장은

■ 1901년 평안남도 강서군 성태면 태일리 태생

■ 정규 교육은 받지 못함

■ 평양지목구 유급 전교사로 뽑혀 순안과 서포, 순천, 숙천, 영유 등지에서 전교회장으로 활동

■평양대목구 관후리 주교좌 성당 건립위원회 상임이사  

■1949년 6월 10일 평양시 인민위원회에 소환됐다가 행방불명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자료=평양교구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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