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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26) 태항산맥을 넘어 산서대목구로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10-20 14:56:14 | 조회 : 1693

가톨릭평화신문 2017. 10. 22발행 [1436호]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26)

태항산맥을 넘어 산서대목구로


깊은 협곡과 가파른 산길도 즐거운 소풍길처럼


▲ 브뤼기에르 주교는 직예 교우촌에서 12일 만에 산서대목구청이 있던 구급촌에 도착했다. 사진은 살베티 주교가 묵었던 집 터에 세워진 오늘날 구급촌 성당.


산서대목구청이 있는 산서성 태원부로 가는 길은 협곡과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인 태항산맥을 넘어가야 한다. 사진은 석가장에서 태항산맥의 낮은 협곡 지대를 넘어 산서성 태원부로 가는 길.




브뤼기에르 주교는 남경교구장이며 북경교구장 서리인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의 요청에 따라 북경으로 가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주교는 직예(直隸) 교우촌에서 방향을 틀어 1833년 9월 29일 산서(山西)대목구청이 있던 산서성 태원부(太原府)로 떠났다.

직예 교우촌에서 머문 한 달간의 생활이 브뤼기에르 주교에게는 억류와 다름없었다. 3주간은 이질로 탈진한 몸을 추스르는 기간이었다. 이후 중국인 신부와 여러 교우가 주교의 중국 여행을 반대해 브뤼기에르 주교를 감금했다. 박해 때라서 서양 선교사가 붙잡힐 경우 자신들에게 닥칠 화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소문은 중국의 서양 선교사들에게 삽시간 퍼졌고, 중국인 신부와 교우들이 페레이라 주교의 지시를 받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강제 억류했다고 와전됐다.

이 소문에 관해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최근 몇 년 동안에 조선에 관해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말로나 글로 많이 퍼졌기에, 그런 잘못된 이야기들을 반박하고 바로잡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진실이 밝혀지고 많은 경우에 손상된 명예가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북경교구장 서리였던 남경교구장이 갑사의 명의 주교(브뤼기에르)의 여행을 방해하고 북경에 거의 도착한 갑사의 명의 주교를 죄수처럼 가뒀다는 말을 하고 글을 쓴 사람이 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어느 정신 나간 중국인 신부가 한 달 동안 갑사의 명의 주교를 사제관에 붙어 있는 작은 채소밭에도 나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자신의 숙소에 감금하다시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중국인 신부는 북경 주교 모르게 중국인 특유의 소심한 공포심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와중에 갑사의 명의 주교는 북경 주교가 쓴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만약, 정부의 허락 없이 몰래 북경에 들어올 경우 시내의 못된 교우들 때문에 크게 위험해 질 것이다. 그러므로 산서로 우회해 서쪽 지방과 달단(만주) 지역을 거치는 길을 모색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관문의 수가 적고 덜 엄격한 데다가 도와주려 하고 도와줄 수 있는 신자는 더 많다. 그 정신 나간 중국인 신부는 몇 달 뒤에 북경으로 불려가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앵베르 주교가 1838년 11월 24일 경기도에서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쓴 편지 중에서)

산서대목구로 떠날 브뤼기에르 주교 일행은 모두 4명이었다. ‘자기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너무도 모르는 귀머거리- 벙어리 선교사’인 주교 자신과 길을 전혀 모르는 왕 요셉, 마부 역할을 할 소몰이꾼 한 명, 천부적으로 겁만 많은 통역자 양 요한이었다. 다행히 10월 1일 산서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안내인 한 명이 합류했다. 그는 페레이라 주교가 지원해 준 사람으로 1832년 이탈리아 선교사를 호광(湖廣)에서 산서까지 안내한 경험이 있었다.

산서대목구청이 있는 태원부로 가는 길은 강남에서 거쳐온 화북평원과는 사뭇 달랐다. 태항산맥(太行山脈)의 깊은 협곡과 가파른 산들을 지나가야만 했다. 200여㎞를 민둥산과 협곡 속을 걸어야 했다. 때로는 깎아지른 언덕 위를 기어올라야 했고, 그런 후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야 했다. 내리막길은 하도 가팔라서 불과 스무 발자국 앞의 길을 분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굽은 길이 많아 노새가 끄는 수레가 두 번이나 뒤집혔다. 주교를 비롯해 세 명이 다쳤다. 주교는 “마차 안에서 타박상을 입고 마는 것이 행인들에게 들키는 것보다 났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그래도 주교는 이 여행길을 만족해 했다.

“첫 번째 여행에 비하면 이번 여행은 즐거운 소풍과도 같이 생각된다. 전에 평야 지대에서는 허기가 져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 산악 지대에서는 먹을 것도 있고, 게다가 나는 걷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만사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은 없다.”(「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에서)

10월 6일 산서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했다. 주교는 관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안경을 쓰고 비단옷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며 고관 행세를 했다.

1833년 10월 10일 직예 교우촌을 떠난 지 12일 만에 브뤼기에르 주교 일행은 산서대목구청이 있는 태원부에 이르렀다. 안내인 한 명이 앞서가 산서대목구장 요아킴 살베티(Joachim Salvetti, 1769~1843) 주교에게 브뤼기에르 주교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살베티 주교와 함께 이 소식을 들은 재정 담당 중국인 신부는 “아이고, 도대체 남경 주교께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우리를 망하게 할지도 모를 주교를 보낸단 말인가” 하고 두려워했다.

그러자 살베티 주교는 “그분은 하느님의 일을 하러 조선으로 가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무슨 피해가 닥칠 일이 있겠는가”라며 안심시켰다. 또 마카오에서 복안까지 브뤼기에르 주교와 동행했던 알폰소 디 도나토(Alphoso di Donato, 1783~1848) 신부도 “유치한 걱정거리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중국인 신부를 나무랐다.

산서대목구청의 위치는 앵베르 주교의 편지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앵베르 주교는 산서 평요현(平遙縣)에서 16㎞ 정도 북쪽으로 가면 기현(祁縣)이 자리하고 있고, 기현에 도착하기 1㎞ 전에 큰길에서 왼쪽으로 700m 정도 들어가는 곳에 산서대목구 주교의 거처가 있다고 했다. 살베티 주교 묘지명에도 쓰여 있는 바로 ‘구급촌’(九汲村)이다.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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