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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천주교의 만남 신앙의 꽃을 피우다 ](중)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8-10-19 09:48:08 | 조회 : 393

가톨릭평화신문 2018.10.14발행 [1485호]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 신앙의 꽃을 피우다 ](중)


한글, 복음 전파 일등 공신되다


까막눈 김서방, 한글 교리서로 천주님 말씀에 눈뜨다



1784년 조선 땅에 천주교회를 들여온 선각자들은 도입 초기부터 한자로 된 교리서와 해설서, 성경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대중 선교를 위해서였다. 신분제도가 굳건했던 당시 조선 시대엔 양반이나 넉넉한 집안 출신이 아니면 배움의 기회를 얻기 어려워 한문 서적만으로는 전교가 어려웠다. 농민이었던 백성은 대부분 가난했기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삶의 과제였다. 그래서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박해시기였던 18~19세기 신앙 선조의 삶과 더불어 한글을 통한 전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본다.



옹기와 교우촌

당시 신자들은 경기도 광주ㆍ이천ㆍ용인 고을의 접경인 태화산 자락을 비롯해 충청도 서천ㆍ한산ㆍ흥산ㆍ비인 고을의 옆인 천방산 자락 등지와 같은 도(道) 경계 지역에서 옹기종기 교우촌을 이뤄 살았다. 포졸들이 들이닥치더라도 도 경계를 넘어가면 관할 밖이라는 이유로 추격을 멈추는 경우가 많아 피신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궁극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함께 모여 살면 함께 기도하면서 신앙을 배울 수 있었고, 주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대로 신자 집안 출신이자 교우촌이었던 수원교구 손골성지를 전담했던 윤민구(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교우촌의 옛이야기를 이렇게 증언했다.

“신자들이 교우촌에 모여 살았던 이유 중 하나가 기도하고 싶고 천주교의 교리를 알고 싶어서입니다. 신자들이 함께 있으면 함께 기도할 수 있어요. 예비신자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글을 몰라 혼자선 기도도 못 하지만, 교우촌에선 함께 기도하고 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글도 배우게 되지요.”

신앙 선조들은 교우촌과 교우촌, 장(場)과 장을 오가며 교류했다. 이들은 주로 옹기장수였다. 당시 옹기장수들은 크고 작은 옹기를 등에 지고 돌아다니며 파는 형태여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기 쉬웠다. 게다가 옹기 속에 천주교 교리서나 묵주 같은 성물을 숨기는 것도 가능했다. 신앙 선조들은 자신이 가진 교리서를 필사해 다른 신자에게 전하고, 자신에게 없는 책은 빌려 필사한 뒤 다시 만났을 때 되돌려주며 신앙에 물들어갔다.

윤 신부는 “가진 책을 팔고 사기도 하고 다른 신자와 바꿔보기도 했다. 전문적으로 책을 필사해주고 먹고 사는 신자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만 하면 실시간으로 신앙 관련 정보를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는 요즘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 심지어 목숨까지 건 여정이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 「성경직해」의 첫 페이지 서문. 오른쪽 페이지에 광무 7년(1903년) 발행됐다고 써 있다.


▲ 천주가사 중 하나인 ‘사향가’. 사향가 중에 긴 것은 840행짜리도 있다.



▲ 「노인문답」(왼쪽)과 「성교요리문답」. 「성교요리문답」은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교리서다. 「노인문답」은 「요리문답」을

 어르신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교리서다.





천주가사, 문맹자들을 위한 구전 교리서

한글 서적을 통한 전교 방법 이외에 문맹자들을 위한 ‘맞춤식 교리(?)’도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가사’다. 국문학에서 ‘천주교 가사’로 부르는 가사는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사향가’ ‘천주공경가’ ‘천당가’ ‘지옥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는 짧으면서도 천주교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다.


‘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겐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애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임금용안 못보았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천당지옥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천주공경가 전문)



전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신유박해(1801년) 이전에 정약전이 천주가사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면서 “1973년부터 지금까지 만나본 신자 어르신들 가운데 글을 모르는 어머니들이 길면 840행이나 되는 가사를 암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 신부는 그러면서 “오히려 글을 아는 이는 노래집을 갖고 있다 보니 암기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선 공의로우셔서 눈이 어두우면 귀를 밝게 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주교윤시제우서

목숨을 던져 신앙을 전파한 프랑스 선교사들도 한글 전파에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시메온(1814~1866, 장경일) 주교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모든 신자에게 한글을 배우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를 통해서다.

1857년 반포된 사목교서인 장주교윤시제우서에는 ‘교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언문(한글)을 배우든 한문으로 배우든 글자를 배우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윤시(輪示)는 ‘돌려가면서 보라’는 뜻이고, 제우(諸友)는 ‘모든 교우에게’라는 뜻으로, 장주교윤시제우서는 ‘장 주교가 모든 신자에게 보내는 돌려가며 봐야 하는 편지’로 해석할 수 있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사전인 「한불자전」.




프랑스 선교사들은 한글의 체계적인 연구와 전파를 위해 ‘한글-한문-프랑스어 사전’과 ‘한글-한문-라틴어 사전’을 제작했다. 한글에 관한 최초의 사전은 1866년 완성됐다고 전해지지만, 그해부터 일어난 대박해인 병인박해 때 불태워져 남아있지는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전은 1880년 완성된 「한불자전」과 1881년 발행된 「한어문전」이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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