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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천주교의 만남] (하) 한글 통한 선교, 열매 맺다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8-10-19 09:52:31 | 조회 : 1801

가톨릭평화신문 2018.10.21발행 [1486호]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 (하)


한글 통한 선교, 열매 맺다


박해받던 천주교와 한글의 만남은 섭리였네


▲ 한글본 「성교감략」.

원본은 중국 북경 교구장인 들라플라스 주교가 성경을 역술한 한문본으로 돼 있다.





교회 역사학자들은 1801년 조선에 전해진 천주교 한문 서적 120종 177권 가운데 3분의 2가량인 83종 111권이 한글로 번역됐다고 보고 있다. 한마디로 천주교와 한글은 ‘상부상조’, ‘상생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천주교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글’이다. 한글 역시 ‘천주교’ 덕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장주교윤시제우서’(1857년) 말고도 조선 천주교회 안에서 ‘한글을 이용한 선교’에 관한 내용을 더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한글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한글운동가 김종구(베르나르도)씨가 한국 교회에 전하는 제안도 함께 싣는다.








최양업 신부와 다블뤼 주교의 편지

조선시대 천주교회가 당시 백성들에게 한글로 선교했다는 기록은 한국 교회 두 번째 사제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편지에서도 발견된다. 1849년 사제품을 받은 최 신부가 2년 뒤인 1851년 스승인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여덟 번째 편지에는 한글에 대한 자랑이 담겨 있었다.

“교리 공부하는 데 한글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조선의 알파벳은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배우기가 아주 쉬워서 열 살 이전이라도 글을 읽을 줄 압니다. 한글은 천주교 전파에 큰 도움이 되어 신부님의 강론과 가르침을 대신해서 산골의 순박한 자들도 빨리 천주교 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851년 10월 15일 절골에서 최양업 토마스 올림.”

최 신부에 앞서 부모님께 한글(조선어)에 대한 편지를 쓴 프랑스 출신 선교사도 있다. 편지의 주인공은 한국 103위 순교성인이기도 한 제5대 조선대목구장 안토니오 다블뤼(1818~1866, 안돈이) 주교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저는 여전히 조선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조선어에 관해 몇 가지 메모해 두었던 것을 여기에 덧붙입니다. 제가 여러 책에서 읽은 바로는 조선어는 중국어와 다르지만 같은 문자로 표기한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조선인은 그만의 독특한 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문자는 중국 문자와 달리 완전한 자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저의 회장이 적어준 그 자모와 기초발음을 여기에 첨부합니다. 모두 이것으로 언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 부분의 발음을 익히게 되면 거의 단어 대부분을 발음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수차례 반복해 익히고 있습니다. 1845년 10월, 아미앵 생 뢰로 로(路), 다블뤼 귀하.”



일부 역사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반론


한글이 천주교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반론을 펴기도 한다. 당시에는 인구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복음화율)이 지금(2017년 12월 말 기준 11%)보다 현저히 낮았는데, 천주교가 한글 전파에 공헌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회 역사학자 윤민구(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그 시대엔 한글을 보급하거나 적극적으로 권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시하고 무시했다”면서 “그런 상황이었기에 천주교만이라도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한글 전파에 앞장서온 가치에 더 주목해야 한다. 숫자(%)로 따질 일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교우촌으로 널리 알려진 대전교구 합덕본당의 주임 김성태 신부도 “어느 종교도, 종교를 떠나 한글에 대해 우리 천주교처럼 관심을 뒀던 부류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한글을 만들었다는 사대부 학자조차 한글을 쓰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천주교가 아주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이 일을 했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역시 “한국 천주교회가 한글을 통해 신앙을 보급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기층민에게까지 천주교가 깊이 심어질 길은 없었을 것”이라며 “천주교회가 비록 선교를 목적으로 했지만, 한글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신자들의 삶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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