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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선포된 교구 순례사적지 | (3) 제1대리구 안성성당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20-12-09 11:35:18 | 조회 : 110

가톨릭신문 2020.12.13 발행 [3223, 4]

 

 

 

새로 선포된 교구 순례사적지

(3) 제1대리구 안성성당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한 복음전파 구심점

초대 주임 공베르 신부

포도 재배·안법학교 설립 등
지역 주민 돕는 일에 헌신

 

 




안성성당 전경. 현재 사용 중인 새 성당(왼쪽)과 옛 성당(오른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구는 11월 29일 제1대리구 왕림·안성성당, 제2대리구 하우현·용문성당을 교구 순례사적지로 선포했다. 교구 순례사적지 특집 세 번째로는 제1대리구 안성성당(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에 담긴 신앙의 역사와 의미를 알아본다.







■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 곁에서


왕림·하우현성당이 박해시대부터 신앙을 지켜오던 교우촌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라면, 안성성당은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리를 잡은 성당이다.


안성지역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로 신자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모여든 곳이다. 산지가 넓게 형성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으면서도 충청도와 경기도를 잇는 지리적 특성으로,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의 많은 신자들이 이 지역에서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안성성당이 있는 자리는 안성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으로 1900년 설립 당시 성당 인근에는 신자들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이런 위치 선정은 인근 교우촌 신자들을 돌보면서도,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더 많은 사람들을 성당 품으로 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안성본당 초대 주임 신부인 하느님의 종 앙투완 공베르 신부(Gombert Antoine, 1875~1950)가 부임했을 당시, 공베르 신부는 주민들에게 핍박을 받았다. 처음 보는 서양인이 지역에 자리를 잡자 주민들이 막연한 불신을 가졌던 것이다. 심지어 지역 주민들 중 일부는 공베르 신부를 해하려고 현상금을 내걸기도 하고, 공베르 신부가 거주한 사제관을 부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공베르 신부는 그런 핍박 속에서도 늘 사랑으로 주민들을 대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약을 제공했다. 성당 마당에 놀러온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수확한 포도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런 공베르 신부의 정성으로 어느새 공베르 신부는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됐다. 이후로도 존경의 마음이 이어져 공베르 신부는 2012년 ‘안성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베르 신부는 이후 한국전쟁 때 납북, 순교해 현재 근현대 신앙 증인으로 시복 추진 중이다.





서양식 석조에 한국 전통의 골기와를 올린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사제관과 

본당 제2주보인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성상.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신앙 전하는 자리


공베르 신부는 안성 지역 가난한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모국에서 포도나무 묘목을 가져와 포도 농사를 가르쳤다.


공베르 신부는 미사주를 만들기 위해 심은 포도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안성지역이 포도농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공베르 신부는 모국인 프랑스를 32차례나 오가며 포도 재배법을 배워오고, 포도나무 묘목을 가져와 안성 지역에 적합한 포도 농사 방식을 실험하고 재배에 성공했다. 이어 성당 주변 토지 50만 평을 매입해 지역 농민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임대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공베르 신부는 오늘날 ‘안성 포도’의 시초가 됐다.


안성본당은 안성지역 교육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본당은 지역사회의 요청을 받고 안법학교를 설립해 지역민들을 교육했다. 교육을 통해 선교를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는데 교육이 도움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안법학교는 현재 안법고등학교로 이어오고 있다.


공베르 신부는 1919년 3·1운동 때는 지역 주민들에게 독립운동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독립운동으로 일본 경찰에게 쫓기는 주민들을 성당에 들여 붙잡히지 않도록 돕기도 했다. 이후에도 가난한 소작농에게 전답을 나눠주기도 하고, 흉년에는 양식을 나눠주는 등 지역민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해왔다.


1922년 건축된 안성성당의 모습에서도 지역과 함께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드러난다. 성당은 우리 전통의 목조건축방식과 서양의 바실리카양식이 절충된 형태로 건설됐다. 성당은 성당 건축사와 근대건축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1985년에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국가사적지 승격을 위해 준비 중이다.


안성본당은 설립당시 안성, 평택 지역 뿐 아니라 충청도 천안, 진천까지도 관할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지역과 함께하며 복음을 전한 안성본당의 노력으로 신자가 꾸준히 증가해 1928년 평택본당, 1938년 천안 오룡동본당, 1956년 진천본당, 1958년 미양본당, 1970년 대천동본당, 1983년 죽산본당, 1992년 던지실본당 등 많은 본당의 모본당이 됐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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