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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位 윤지헌 프란치스코 지위 (신분, 직업) : 평신도 지도자 양반 인쇄하기
출생연도 : 1764년 출생지 : 전라도 진산 순교일 : 1801. 10. 24
연령 : 37세 순교형식 : 능지처참 순교지 : 전라도 전주

 

윤지헌 프란치스코 (1764~1801년)

 

 

 


윤지헌(尹持憲) 프란치스코는 1764년 전라도 진산(현 충남 금산군과 논산군 지역)에서 학문으로 이름이 있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1791년의 신해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바오로)은 그의 형이다.


프란치스코는 1789년에 형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에 앞서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안되어 인척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얻어보고 오랫동안 그 내용을 탐독한 끝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1787년 이승훈(베드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윤지충은 가족과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아우 프란치스코와 함께 열심히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갔다.


1791년에 형이 순교하자 프란치스코는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진산을 떠나 전라도 고산의 운동(현 완주군 운주면 저구리)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런 다음 교회 서적을 베껴 읽으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천주교에 입교시키곤 하였다. 또 1795년에는 저구리를 방문한 주문모(야고보) 신부로부터 성사를 받았으며, 이후에는 교회의 밀사 황심(토마스)을 북경에 파견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되어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교회 활동이 관청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의 옥에 갇혔으며, 감사 앞으로 끌려나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이때 그는 이미 드러난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다음과 같이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천주교 교리를 끊지 못하였고, 고질병처럼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있으니, 오로지 만 번 죽겠다는 말씀만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천당 지옥의 이치를 굳게 믿은 탓에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시 박해자들은 교회 밀사가 북경을 왕래한 이유를 알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조정의 명에 따라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포도청과 형조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의금부에서 마지막 문초를 받은 후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였으며, 다시 전주로 이송되어 1801년 10월 24일(음력 9월 17일)에 능지처참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였다. 그가 순교한 뒤 고산에 갇혀 있던 아내와 가족들은 모두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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