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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강원 감영과 서지마을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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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 김강이최해성

 

 

 

- 강원 감영에서 신앙을 증거한 순교 복자들 -

 

 

복자 김강이 시몬, 최 비르지타와 최해성 요한

 

 

"제가 지금 얼마 되지 않는시간의 목숨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제 영혼은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 강원 감영 선화당 -

 

 

강원 감영(사적 제439호)

 

* 원주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강원 감영은 옛 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강원 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왕조는 1395년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하고, 강원도의 수부를 원주로 정하여 강원 감영을 설치하였다.

강원 감영의 건물들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634년 원주 목사 이배원이 재건하기 시작한 후, 여러 목사와 관찰사들이 계속 건설하였다. 강원 감영은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 역사 창조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 조선 8도 제도를 23부 제도로 개편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강원 감영의 복원 작업은 2000년부터 시작되어 현재 그 일부가 복원되었다.

 

'선화당'이라는 편액의 의미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뜻으로 관찰사는 이곳에서 행정, 농정, 조세, 재판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강원 감영에서 신앙을 증언한 첫 번째 순교자

 

* 이곳에서 복자 김강이 시몬이 신앙을 증거하고 옥사하였다. 그는 1801년의 신유박해 때는 지도층 신자로 지목되어 피신해 다녀야만 했다. 박해가 끝난 뒤에는 등짐 장사를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열중하였다. 그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강원도 울진으로 가서 정착하였으나 옛 하인의 밀고로 아우와 조카와 함께 체포되어 경상도 안동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살던 강원도의 수부인 원주로 이송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형이 집행되기 전에 이미 형벌로 인한 상처가 아주 심한데다 옥중 생활에서 얻은 이질로 1815년 12월 5일 옥사하였다.  강원 감영에서 순교한 첫 번째 순교자가 된 것이다.

 

 

"원주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해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우리 천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 1839년에는 복자 최 비르지타와 조카인 최해성 요한이 강원 감영에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최 비르지타는 남편이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를 숨겨 준 죄로 체포되어 유배를 가 그곳에서 병들어  죽게 되자, 오빠인 최해성의 부친에게 가 함께 살았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조카 최해성 요한이 먼저 체포되어 원주 감옥에 갇혔고, 최 비르지타는 조카를 만나러 갔다가 관원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해 최해성은 형벌로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키며 9월 6일 참수형을 받았다. 배교를 강요 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던 최 비르지타는 옥에 가두고 굶겨 죽이라는 명령으로 4개월 동안 옥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1839년 12월 8일과 9일밤 사이였다.   

 

 

- 최해성 요한에 대한 순교 행적을 수집하여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적어 보낸

최양업 신부의 1856년 9월 13일자 편지 일부 -

 

 

 " 그는 1839년에 조선 교회 전체를 휩쓴 기해대박해 때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골에 살았던 관계로 왕도(서울) 사람들에게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해의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던 때에 그 순교록(기해일기)에서 빠졌습니다. 다행히 그의 행적에 대한 구술 내용을 적어 놓은 종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 및 잘 알려진 친구들이 생존해 있으므로 저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서지 마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2리의 '서지 마을'은 최해성 요한이 박해 시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숨어 들어와 작은 교우촌을 이루며 살던 곳이다.  그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신심이 두터웠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애긍을 실천하며, 교우들에게  "천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말하곤 하였다. 이곳 서지 교우촌에 선교사 신부님이 방문하여 그는 이곳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서지 마을에 그 자취는 남아 있지 않았다. -  

 

 

           - 서지 마을을 방문한 원주 교구장 주교님과 역사전문가, 법정 관계자 일행(2006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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